2007년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을 통해 5살 천재 모차르트라고 소개됐던 작은 소녀를 기억하는지. 선천적으로 안구가 없이 태어나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는 피아노 건반이고 악보고 하나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고사리 같은 손을 놀려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냈고, 그 기적 같은 모습에 많은 사람들은 크게 감동했다.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천재 소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피아노(사진)'는 작은 손으로 희망을 연주하던 소녀 유예은에 관한 가슴 따뜻한 기록이다.
키만 훌쩍 자랐지 깡마른 몸과 천진한 웃음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스크린 속 예은이는 오늘도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연습에 한창이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걸림돌이다. 피아노 건반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으니 건반을 누를 때마다 실수가 생기고, 악보를 읽을 수 없기에 혼자 힘으로는 작곡가의 원뜻을 살려 연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귀로 들은 선율을 그대로 재연해낼 수 있다는 놀라운 재능을 가졌지만, 피아니스트라는 꿈은 그 재능 하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으로 나간 콩쿨에서 예선 탈락한 예은이와 가족들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힘든 일이 생겨도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여린 소녀는 실패에 큰 상처를 받고는 피아노 연습마저 등한시한다.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은 가족. 입양아 위탁 가정을 운영하던 중 선천적 시각 장애가 있는 예은이를 맡아줄 부모가 나타나지 않자 직접 입양을 결정했을 만큼 큰 마음을 가진 엄마는 예은이의 눈물과 투정을 모두 받아주는 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아빠는 예은이의 재능이 다른 방향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가족들의 끝없는 지지 속에 예은이는 조금씩 자란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할 일들에도 겁을 내고 울음을 터뜨렸던 소녀가 조금씩 단단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특히 혼자 길을 걷는 게 무서웠던 예은이가 스틱에 의지해 한 걸음을 내딛는 모습, 꾸지람 속 이어지는 연습을 견뎌내 좋은 성과를 이루는 장면 등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3년에 걸친 촬영, 2년 간 이어진 후반 작업 기간 동안 출연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임성구 감독은 "'기적의 피아노'는 슬픈 영화가 아닌 희망의 영화"라며 "예은이와 가족들의 기적은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 더 큰 기적이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9월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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