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공간(空間)'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는 르네상스 호텔 도면과 준공 사진 뿐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 씨가 병상에서 그린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르네상스 호텔에 대한 자료가 달랑 도면과 사진 한 장 밖에 남아 있지 않다니. 더욱이 공간은 김수근 씨가 직접 설립한 그의 혼(魂)이 담긴 건축사무소가 아닌가.
가장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공간에서 실망스러운 답변을 들은 기자는 이후 대형서점을 비롯해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대학교도서관에서 김수근 씨와 관련된 책을 모조리 뒤졌다.
하지만 르네상스 호텔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딱 한 줄. '김수근의 후기 작품으로 코너를 둥글게 처리하여 매우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편안하고 세련된 조화가 돋보이는 건물로 도시에 활력을 제공했다'는 표현이 전부였다.
당시 김수근 씨가 어떤 생각으로 르네상스 호텔을 설계했는지, 어떤 점을 고민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다만 김수근 씨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이 남긴 대화와 그가 아꼈던 승효상 이로재 대표의 설명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밖에 없었다.
르네상스 호텔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모기업인 삼부토건의 경영난으로 매각될 운명에 처해 있다. 지금도 르네상스 호텔이 김수근 씨의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르네상스 호텔이 사라지게 된다면 더 그럴 것이다.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건설부동산부=고병기기자/staytomorrow@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