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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에서 지난 3월 보고서 하나가 나왔다. 제목은 '에너지 2020 : 북미가 새로운 중동이 되나?'이다. 미국 등 북미 지역에서 석유와 가스 생산이 빠르게 늘면서 앞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가 수십년간 에너지 패권을 쥐어왔던 중동을 능가하는 에너지 대국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보고서가 나온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적으로 에너지산업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원전 르네상스도 주춤하는 분위기이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 또한 유럽 재정위기,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선진국 정부의 지원이 줄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美, 세계 최대 석유가스 생산국 전망
반면 셰일가스, 셰일오일, 오일샌드 등 비전통 석유와 가스는 이제 본격적인 부흥의 초입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각광받는 것은 셰일가스.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층인 셰일층 암석 미세한 틈에 존재하는 가스로 화학적 성분은 기존 천연가스와 동일하다. 과거에도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경제성 때문에 채굴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채굴기술이 발달하면서 채굴량도 급속히 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 중 셰일가스의 비중은 지난 2000년 1%에서 2010년에는 23%로, 지난해 9월에는 34%까지 증가했다. 셰일가스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셰일가스 덕분에 미국은 지난 2009년부터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 됐고 오는 2016년부터는 수출까지 할 예정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올해 연두교서에서 "미국은 앞으로 백년간 사용할 수 있는 가스자원이 있다"며 "셰일가스를 안전하게 개발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셰일가스 생산이 이처럼 급증하면서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 또한 급락하고 있다. 지난 3월 현재 단위(MMbtu) 당 가격은 2.3달러 수준. 2008년 한때 12달러를 넘던 가격이 이처럼 급락한 것이다. 일본 등 아시아의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17달러로 미국보다 7배 높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제 미국 에너지업체들은 셰일가스 대신 셰일오일 시추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전세계 셰일오일 매장량의 80%가 북미에 집중돼 있다. 미국이 셰일가스 만큼 셰일오일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가스에 이어 석유에서까지 미국이 에너지 패권을 쥐는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유가도 내려가고 있다. 현재 미국산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은 배럴당 104달러선. 북해산 브렌트유는 124달러, 두바이유는 122달러선이다. 특히 WTI 선물 가격을 보면 5년물이 92달러선에 거래되는 등 시간이 갈수록 내려가는 커브를 보이고 있다.
중동·러시아 지정학적 갈등 완화 효과도
물론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최근 셰일가스 등 비전통 에너지 자원을 강조하고 붐 조성을 유도하는 이유에는 올 연말 미국 대선을 겨냥한 포석도 깔려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통한 미국의 부활과 희망의 메시지로 대선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력인 셈이다.
그러나 실제 글로벌 자원시장의 흐름은 에너지 패권의 이동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10년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 기업들의 10대 자산인수 사례를 보면 5개가 미국 내 셰일자산 인수, 2개가 캐나다의 오일샌드 인수였다.
이 같은 글로벌 에너지 패권의 이동은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가스ㆍ석유 등 에너지가격 하락, 미국 경제의 부활, 달러가치 상승, 러시아ㆍ중동 지역에서의 지정학적 갈등 완화 등이 그 일부이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에너지 소비국으로서 우리 역시 이 같은 변화에 주목하고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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