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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서울 지역 변호사 숫자는 1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올해도 사법연수원 수료자와 로스쿨까지 총 2,000여명의 변호사가 배출되었고 불과 몇 년 안에 변호사 숫자는 지금의 배가 된다.
수요가 한정된 법률시장에 이렇게 공급되는 변호사가 많아지다 보니 한 달에 단 한 건도 수임 못하는 변호사도 있다. 사건 브로커를 고용해 일을 하다가 처벌받은 변호사에 관한 기사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패키지로 저렴하게 사건을 수임한다는 사이트까지 등장하였다.
최근 한 여성변호사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사이트에 365일 24시간 근무하는 변호사로 광고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해당 사이트 운영자를 형사고소한 일이 있었다. 법조인이라는 직업이 부와 권력의 표상인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는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사법시험만 합격하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변호사 생활은 늘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의뢰인들의 다양한 클레임부터 재판장님의 호통, 수사기관의 눈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소송 상대방이 젊은 여자 변호사라고 얕잡아보고 전화를 걸어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을 하거나 법원에서 만나 때릴 듯이 달려들어 분한 나머지 몇 일 동안 잠을 못 이룬 적도 있다.
실제로 앙심을 품은 소송 상대방이 변호사를 폭행하여 경찰을 부르는 일도 있었다. 어느 변호사는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의뢰인에게 집행유예를 호언장담했는데 의뢰인이 선고일에 법정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의뢰인 가족 앞에 말없이 안경을 벗고 얼굴을 내밀었다고 한다.
‘저를 치십시오.’ 일반인 시각에서도 변호사 지위에 대한 평가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듯하다. 그러나 예전 같지 않다고 푸념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여기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우스갯소리로 이제는 민간인 보다 변호사 수가 많다고 한다. 그만큼 변호사 시장이 어렵고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선임변으로 있던 변호사 중에 상가관련 소송에 대해서는 가히 전문가라고 할 만한 분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하여 이혼위기(?)까지 감수하면서 본인의 역량을 쏟아 부은 끝에 이룬 성과이다. 광고를 하거나 사건 수임을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신뢰를 얻는다. 그 분이 필자가 변호사 초년차 때 구속전 피의자심문을 앞두고 쓴 변호인 의견서에 대해 코멘트한 것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던진 한 마디는 간단했다. “너 이거 00 회장님 구속시키려고 썼지. 정말 이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 그 때 밤을 새워 재작성에 들어갔고 영장 청구 기각이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변호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은 의뢰인에 대한 진정성이 아닌가 한다.
진정성은 마음에서 우러난다. 의뢰인을 같이 분노하고 고심하는 동반자로 생각할 때 생긴다. 대개 많이 투자하고 공을 들인 사건이 결과도 좋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주는 메리트는 분명 예전보다 못하다. 어디 가서 소위 ‘갑질’할 수 있는 곳도 없다. 그러나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을 보호하고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도 변호사다. 내 직업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변호사로서 이제 겨우 몇 걸음 왔다. 앞으로 남은 기간 약자를 보호하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진정한 법률가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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