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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3월 10일] 중소기업인으로 산다는 것

얼마 전 한 시중은행은 전국 지점에 대외비를 붙여 이례적인 공문 한 장을 내려보냈다. 공문의 내용인 즉 슨 최근 중소기업 대출과 관련해 사회적 관심이 높은 만큼 이런저런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입 조심을 각별히 단속하는 것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은 서울경제신문의 보도에서 비롯됐다. 해당 은행은 기사가 나가자 마자 어디에서 얘기가 새나갔는지 발언자 색출에 들어가는 등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결국 발원지를 찾지 못하자 궁여지책으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공문까지 내려보내는 사태로 번진 것이다. 은행·대기업·세무당국에 눈칫밥
뿐만 아니다. 한 중소기업 관련기관에서는 자금을 신청해도 제때 집행되지 않는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신문에 실리자 담당직원이 고발자(?)로 지목된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까지 해대는 바람에 한바탕 치도곤을 당했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에 대한 각별한 관심 탓인지 모두가 중소기업 살리기에 한마음으로 나서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과도한 애정이 오히려 기업경영에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아우성마저 터져나오고 있다. 숱한 이해 당사자들이 높은 관심에 비례해 시시콜콜 참견하고 은혜를 갚으라는 식으로 간섭하다 보니 가뜩이나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는 이 땅의 중소기업들을 더욱 옥죄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며칠 전 기자와 만나 “중소기업 사장들은 예로부터 ‘3대 상전’을 모시고 산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주거래은행과 대기업ㆍ세무당국이 바로 주인공들인데 이들 3인방의 틈에 끼여 한시도 마음 놓고 살 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행여라도 미운털이 박히면 자금줄이 사라질까, 납품이 끊길라, 세금 추징에 회사가 거덜날까 가슴 졸이며 산다는 얘기다. 키코(KIKO) 피해기업도 마음고생이 여간하지 않다. 과연 키코 사태가 누구 탓인지는 법정에서 가려질 사안이지만 거래은행들은 감히 소송을 걸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당 기업들을 들들 볶고 있다는 게 중소기업인들의 한결같은 호소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어느날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채 법인카드와 적금통장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흔히 기업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괘씸죄’라고 한다지만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고객은 왕" 서비스 정신 되살려야
요즘 정책자금 창구에 중소기업 사장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는 것도 자금 부족 탓이 크지만 은행에서 보험이니, 적금이니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워낙 많다 보니 피곤한 나머지 정부 돈을 빌려 쓴다는 하소연도 적지않다. 오죽하면 중소기업중앙회가 발벗고 나서 중소기업인들의 금융민원을 접수하겠다고 신고센터까지 열고 홍보에 나섰지만 한 달이 가까워지도록 제대로 된 애로사항 한건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은행이든 정책기관이든 더 이상 중소기업 위에 군림하려 들지 말고 고객을 철저히 섬기고 모시겠다는 본연의 서비스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혹시나 피곤한데 쓸데없는 일거리만 늘어났다고 귀찮아 하는 마음이 있지나 않는지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때다. 필요하다면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들이 고객을 왕처럼 모시겠다며 펼치는 서비스경영이라도 한번쯤 벤치마킹하라고 권하고 싶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은행장들이 공단에 한번이라도 나가 중소기업 사장들의 거친 손을 잡아주고 격려해줬다는 얘기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듯하다. 대통령까지 수시로 현장을 찾아 중소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느라 애를 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흔히 ‘중소기업은 9988(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한다는 뜻)’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늘아래 층층시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어쩐지 뜬구름 잡는 얘기로 머무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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