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지난달 모두의 예상을 깨고 양적완화를 당분간 유지하기로 하면서 한숨 돌린 신흥국이 미 연방정부의 '셧다운(폐쇄)'으로 또다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 정부 폐쇄가 단기간에 그칠 경우 신흥국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장기화할 경우 대(對)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무역수지에 타격을 입고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원자재 의존형 신흥국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 경상수지 적자폭이 큰 인도ㆍ인도네시아ㆍ터키 등의 금융시장은 핫머니 유출로 또 한 번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정부 지출 삭감과 소비자들의 수요감소로 대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신흥국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 들어 4월까지 미국의 최대 수입국은 중국이며 캐나다ㆍ멕시코ㆍ일본ㆍ독일ㆍ한국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봤을 때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큰 2대 수출 대상국이다. 또 수출 품목별로도 1위 승용차, 2위 승용차 부품, 3위 휴대폰 등 소비자와 밀접한 품목이 많아 정부폐쇄에 따른 소비수요 감소에 한국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브라질ㆍ러시아 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11월 인도분 가격은 연방정부 폐쇄 문제를 놓고 미 정치권이 이전투구를 벌인 지난주 1.73%나 하락했고 1일에도 장중 0.3% 하락했다. 총 28개 원자재 가격을 보여주는 로이터제프리CRB인덱스도 지난달 30일 285.54로 전일에 비해 0.5% 하락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브라질 증시는 이날 2.61%나 급락했다.
또 인도ㆍ인도네시아ㆍ터키 등 경상ㆍ재정적자 폭이 큰 신흥국 금융시장이 미 연방정부 폐쇄를 계기로 다시 출렁일 수 있다는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며 투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쏠리면서 이들 국가로부터 막대한 자금이 다시 한 번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도는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6월로 마감된 분기의 적자가 218억달러로 이전치(181억달러 적자)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등 펀더멘털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도 증시는 지난달 30일 1.76% 하락했으며 1일에도 혼조세를 보였다.
미 의회의 극적 타협으로 정부가 정상 가동되더라도 미 국가부채 상한선 증액이라는 더 큰 산이 남아 있다는 것도 신흥국에는 악재다. 스탠다드차타드(SC)는 미 정부 폐쇄가 결정된 직후 배포한 투자노트를 통해 "미국 국채는 전세계 금융시장의 기준점이므로 미국의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이 지위가 흔들리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며 "전세계 경제를 심각한 경기침체로 되돌리고 또 다른 금융권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도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전세계 궁극의 안전자산인 미 국채의 지위가 미국의 디폴트로 흔들리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고 미국이 경기침체로 회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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