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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8월18일] 아작스 작전


쿠데타는 실패로 보였다. 이란 정권이 예상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친위 쿠데타를 지시한 국왕은 로마로 도망쳤다. 1953년 8월18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쿠데타 성공 가능성 희박’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같은 날 밤 이란의 수도 테헤란.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 CIA와 MI 6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돈을 풀어 시위대를 구성한 것. 근육질의 레슬링ㆍ역도 선수들이 선두를 맡았다. 마침 영국에 대한 석유수출 금지로 시작된 경제난에 불만이 높아지던 상황. 시위가 거세지고 친정부ㆍ반정부 시위대간 충돌로 사망자 300여명이 발생한 뒤 군대가 출동하자 상황은 완전 뒤집혔다. CIA는 보고서를 올렸다. ‘아작스(Ajax) 작전 성공!’ 미국이 선거로 뽑힌 정권을 몰아내는 공작을 택한 이유는 석유. 모사데그 총리의 석유국유화 때문이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데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정치학과 법률을 공부, 국제정세를 이용하는 데도 밝았던 모사데그 박사가 소련과 접촉하자 더 기다릴 게 없었다. 쿠데타 성공으로 미국과 영국은 석유 이권을 되찾았다. 아작스 작전의 CIA 책임자인 커밋 루스벨트(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손자)는 국가안보 메달까지 받았다. 아작스 작전은 과연 성공이었을까. 외세에 힘입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샤(국왕) 팔레비는 대미동맹을 믿고 군비를 확장하며 독재를 일삼다 1979년 회교혁명으로 쫓겨났다. 회교 원리주의 확산을 두려워한 미국은 이란ㆍ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 편을 들었다. 2000년 3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1953년의 이란정권 전복과 후세인 지원은 실수였다고 인정했지만 잘못 끼운 단추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의 수렁은 날로 깊어지고, 중동의 반미감정도 확산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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