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이 동네북이다. 잇단 비리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한때 '명품 무기'로 포장됐던 국산 무기들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다. 야당이 MB정권 시절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방산 비리'까지 묶어 이른바 '사자방 비리' 검증을 벼르고 있는데다 검찰은 역대 최대 규모의 특별 수사팀을 꾸렸다.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은 '혈세 낭비인 방산 비리를 철저하게 밝혀내고 타협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위기도 보통 위기가 아니다.
'방산 비리' 색출과 발본색원. 다 좋다. 필요한 일이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기 바란다. 나라의 살림살이도 그렇거니와 국민의 혈세로 이뤄진 전력증강사업에서 비리가 있었다면 도려내야 마땅하다. 별다른 이견도 나오지 않는다. 안보 논리로나 경제 논리로나 무기 도입을 둘러싼 비리는 언어도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말이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의 '방산 비리 색출'은 언어적 타당성만 가질 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표적이 잘못됐다. 대부분 외국에서 무기나 부품을 수입하는 과정에 예비역 고위 장교가 끼어서 일어난 비리를 마치 국내 방위산업의 문제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를 '방산 비리'로 싸잡아 비난한다면 가동률 50% 안짝의 열악한 환경과 최저낙찰제라는 야박한 입찰 조건에서도 연구개발에 땀 흘려온 국내 방산업계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용어부터 '군수 비리'로 바꿔야 한다.
두 번째로 국내 방산업체의 위축은 안보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국산 제트 항공기인 T-50 시리즈의 성능을 속으로 의심하던 공군 관계자들의 언급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외국산 일색인 전투기에 부품 수요가 발생해 제작업체에 알리면 빨라야 6개월, 길면 2년까지 전투기가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통례에 비춰 국산 제트기는 군수 보급에 혁신을 가져왔다. 전화하면 부품이 바로 도착하거나 기술진이 현장에 급파돼 즉시 수리하는 군수 보급의 기적을 국산 제트기로 인해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국내 방위산업이 갈래갈래 찢기고 나면 이렇게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후속 지원이 가능할까.
세 번째로 방위산업에 대한 근거 없는 매도는 산업 진흥의 독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신뢰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무기체계를 구축하려면 설계에서 후속 지원은 물론 소재와 부품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다는 전제가 붙는다. 첨단산업이면서도 신뢰도가 높은 무기생산에 대한 기술을 상업용으로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창조경제도 가능해진다. 일본이 자랑하는 고속열차 신칸센의 원천기술도 미쓰비시중공업이 미국제 전투기를 면허 생산하면서 관련 기술이 축적됐기에 가능했다. 우린 그런 기회를 포기할 것인가.
국내 방위산업체가 생산하는 '국산 무기'가 안고 있는 진짜 결함은 조급함과 '포퓰리즘'에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방위산업 국가에서는 개발비용 이상의 실험 비용을 투입하고 개발 시간보다 긴 운영평가 기간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우리는 무기를 개발하면 그뿐이다. 잠수함 잡는 로켓 어뢰인 홍상어가 대표적인 케이스. 개발이 끝났다며 몇 차례 실험만으로 실전 배치해 문제를 일으켰다. 외국처럼 정부가 시험평가에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투입했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음에도 몇 푼 아끼려다 국민적 불신만 초래하고 말았다.
방위산업 최대의 적은 무기 개발 또는 수출을 정권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포퓰리즘이다. 정부가 윽박질러 졸속계약으로 수출에 성공했으나 후유증을 겪는 방위산업체도 하나둘이 아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방위산업 수출목표를 제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방산 비리'를 공개적으로 수사하는 나라도 흔치 않다. '방산 비리'를 수사하려면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권의 치적 욕심이 야기한 방산업체의 손실부터 파악하는 것이 순서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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