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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럽은 한국미술가들의 활약으로 뜨겁다. 17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공식 개막한 이우환의 전시 뿐 아니라 프랑스 서부를 대표하는 휴양도시 라볼(La Baule)에서는 조각가 박은선의 전시가 한창이고, 동유럽의 체코 프라하에서는 설치·영상작가 최재은의 의미있는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서해안 명품도시를 유혹하다=해변과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색색의 화강암이 층을 이룬 대형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부호들이 즐겨 찾는 서유럽의 대표적 명품 휴양도시인 라불은 관광객들의 예술적 취향에 부합하고자 매년 작가를 엄선해 여름 휴가기간에 맞춰 기획전시를 마련하는데, 올해는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박은선(49)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시내·해변·공원 등지를 아우르는 대규모 야외 조각전은 18일 개막행사가 열려 9월 5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진행 비용부터 작가 체제비까지 전액을 지원하는 시(市)가 1억원 이상을 기꺼이 썼다는 후문이다. 작가는 색깔이 다른 대리석이나 화강석을 다듬어 이를 번갈아 붙이는 방식으로 생성과 소멸, 연결성, 무한증식 등의 주제를 선보여 왔다. 경희대와 이탈리아 국립 카라라아카데미를 졸업해 22년째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그는 마리노마리니미술관 초대전 등을 열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독일·벨기에·스위스·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에 고정팬을 확보한 대표적 '미술 한류' 작가다. 지난해 6월에는 룩셈부르크의 에스페랑주 시, 10월에는 스위스 루가노 시의 초청으로 야외 조각전이 열렸다.
◇동유럽 역사를 품에 안다= 체코의 국립프라하미술관은 지금 한국작가 최재은(61)의 개인전 준비로 분주하다. 영상 및 설치작가로 세계 전역을 누비며 활동하는 최재은은 프라하미술관의 7개 전시장 중에서도 성 아그네스를 기리는 가장 역사적 공간인 성아그네스 수도원 건물에서 '순환이 지속되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연다. 오는 23일 개막해 9월 21일까지 계속되는 전시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의 공존 등 철학적 주제를 '시간성'과 함께 표현하는 그의 작품이 전시장의 역사성과 조화를 이룰 것으로 미술관 측은 기대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가가 이곳에서 개인전을 열기는 처음이다. 미술관이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로 내건 사진 '누군가 있다, 아무도 없다'는 꽃병의 꽃이 시들어 죽은 자리에 계속 새 꽃을 가져다 꽂으며 삶과 죽음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을 포착해낸 작품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에 걸쳐 촬영했다. 또 헌 책방에서 수집한 100년된 오랜 종이들을 소재로 한 설치작품 '종이 시(paper poem)' 등을 선보인다. 1953년 한국에서 태어나 7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최근에는 독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긴 최재은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일본작가로 선정됐고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현 플라토) 개인전을 비롯해 일본 하라미술관 개인전, 이탈리아 갤러리아밀라노 개인전 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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