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1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측의 전날 특별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특별제안과 관련해) 내용상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있다"고 밝히는 등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일찍이 예견됐다.
다만 대변인 성명이 나올 때까지 통일부와 청와대가 마지막까지 문구를 수정하는 등 장기간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실제 정부는 북한이 지난 1월 '상호비방을 중단하자'는 등의 내용을 담은 중대제안을 했을 당시에는 "명분 축적을 위한 의도"라는 정부 당국자의 평가를 몇 시간 만에 내놓는 등 대응이 빨랐다.
정부가 이렇듯 1박2일간 문구 작성에 공을 들인 것과 관련, 조기 레임덕 우려까지 나오는 박근혜 정부의 상황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1월만 하더라도 개성공단 재가동 등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자신감이 컸다. 이 같은 자신감은 3월 '드레스덴 선언'으로 이어지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더욱 굳건히 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는 전반적인 국정을 이끌어갈 동력을 상실했다. 정홍원 총리의 사퇴 입장 발표 이후 안대희·문창극 등 총리 후보자 2명이 연달아 낙마한 뒤 정 총리 유임 결정을 내린 것 또한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 상실을 가속화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다시금 도약할 수 있는 카드가 될 북한 관련 사안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는 평가다. 대북정책까지 실패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침몰은 기정사실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 부문만큼은 국민의 지지가 매우 높았다. 또 인천아시안게임에 북측이 참가하지 못할 경우 '남남(南南)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도 정부의 고민을 깊게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불필요하게 한반도 긴장을 끌어올린다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평가다.
정부가 통일준비위원회 발표를 시작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 등의 카드를 마련하는 상황에서 북측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허를 찔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가안보실(NSC) 상임위원 중 김관진 신임 실장을 비롯해 국정원장과 국방부 장관 등 절반가량이 한 달 사이에 교체된 상황에서 빠른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동향 수집을 담당하는 국정원장이 한 달 넘게 공석인 점도 정부 대응을 쉽지 않게 했다는 분석이다.
김영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북한이 제안을 내놓은 시기는 총리 유임 결정이 내려지는 등 세월호 정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통일준비위원회 등 새롭게 대북정책을 시작하려는 정부로서 입장 표명과 관련한 수위 결정 등이 어려웠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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