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5월 쓰시마해협에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지휘하는 소규모 일본함대가 러시아 해군의 주력 함대를 격파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이다. 물론 전체 한국의 역사로 짚어보면 이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같은 해 제2차 영·일 동맹, 가쓰라·태프트 밀약, 포츠머스 조약 등으로 한반도를 차지한 일본은 한국에 있어 서구 열강들과 같은 존재였다. 그로부터 5년 뒤 8월, 결국 대한제국은 막을 내리게 됐다.
한반도에는 비극의 단초가 됐을지 모르지만, 중세 이래 아시아 국가가 유럽 열강을 처음으로 격파한 이 사건 자체를 놓고 적잖은 아시아 리더들이 열광했다. 1905년 일본 승리가 한 줄기 빛이었을 만큼,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침략은 아시아 대륙을 완전히 무력화 시켰기 때문이다.
영국이 이집트와 수단, 인도 반도를 점령했고 프랑스는 모로코와 튀니지, 알제리, 베트남을 손에 넣었다. 네덜란드는 자바와 오세아니아 섬들의 전제적 통치자가 됐고, 러시아는 투르키스탄 서부와 트란스옥시아나, 캅카스, 다게스탄의 큰 도시들을 획득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에스파냐 군대를 몰아내고 다시 식민지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오늘의 21세기는 세계 중심이 미국과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책은 격변의 20세기 역사에서 아시아가 서양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유럽 제국들의 폐허에서 어떻게 아시아가 다시금 부상할 수 있었는지 역사의 흐름을 짚는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서양 중심의 역사를 넘어 아시아적 시각으로 아시아의 시선으로 일련의 역사를 차분히 기억해 밟아가고 있다. 인도 세포이 반란·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중국 신해혁명·일본 군국주의 등을 일부는 역사 에세이 형식으로, 일부는 아시아 주요 지식인의 전기 형태로 그려 거시적·미시적 관점에서 두루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21세기 들어 서구가 힘을 잃고 아시아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지난 세기의 주체적 의식과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전통과 서구 모방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19세기부터 아시아 지식인들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좌절하며 저항했던 전통이 아시아의 내면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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