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저층 재건축 추진단지들이 서울시의 소형주택 건립 확대 조치로 수익성 악화는 물론 자칫 사업 표류 위기에 몰렸다. 총 2만4,000여가구에 달하는 저층 재건축 추진단지 대부분이 전용 60㎡ 이하 소형주택으로 지어진 아파트다. 서울시 방침대로 멸실 전 소형주택 물량의 50% 이상을 확보할 경우 사업계획 자체를 백지화하고 다시 짜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15일 서울시와 일선 재건축 추진위ㆍ조합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재건축 시장에 소형 의무건립 비율이 확대될 경우 조합원의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해 추가 가격 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개포지구 외에도 사업시행인가 이전 단계에 있는 다른 추진위와 조합에도 소형 의무비율을 늘리는 방향으로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며 "다른 곳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근 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심의가 보류된 개포지구 내 4개 저층 단지는 물론 현재 사업을 추진 중인 대부분 저층 재건축 추진단지들이 모두 이 규정의 덫에 걸리게 된다.
◇재건축 단지들, 소송까지 불사=서울시의 방안은 재건축 때 전용 60㎡ 이하 소형주택 수는 최소한 기존 단지 소형주택 수의 절반 이상을 유지하라는 것. 당초 개포주공 2ㆍ3ㆍ4단지와 시영에 대해 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소형 50% 이상을 확보하라는 요구보다는 완화된 것이지만 20%를 소형으로 짓겠다는 각 단지 계획보다는 훨씬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 방침이 알려지자 일선 재건축 추진단지들은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장덕환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추진위원장은 "조례로 강제성을 띠게 되면 조합 입장에서는 행정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필요하다면 헌법소원까지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 중개업소들도 서울시의 방침이 큰 악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가뜩이나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시세지만 이번 방침은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개포동 K공인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 취임 후 기존 계획 자체를 뒤바꿔야 할 만큼 큰 변수가 잇따르고 있다"며 "재건축 자체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가 소형 건립 규정을 강화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재건축 때 전용 85㎡ 이하를 60% 이상 짓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면적별 비율은 일선 지자체 조례로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하락'과 '재산권 침해 논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전문가들은 서울시의 이번 방침으로 강남권 저층 재건축 지분 가격이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형으로 갈아타려고 했던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칫 아파트를 처분하고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강남권 저층 재건축 투자자 대부분은 전용 85㎡ 안팎의 중형 주택을 가장 선호한다"며 "소형 의무건립 물량을 늘리면 자칫 소형아파트 배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물이 늘어나고 가격도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대부분 저층 재건축 추진단지들이 사업계획에 임대주택 건립 등을 통한 공공성 확보방안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주민 의사에 반해 강제로 소형주택을 늘리라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강남권의 경우 여전히 중대형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소형주택 비중을 늘릴 경우 장기적으로 아파트 가치가 하락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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