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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딥(경기 삼중침체)' 위기로 내몰린 영국에 '대처리즘'이 부활하고 있다.
조지 오즈본 영국 재무장관은 20일(현지시간) 발표한 2013~2014회계연도 예산계획에서 재정지출 긴축을 밀어붙이는 한편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택소유를 강조하는 등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정책을 연상시키는 정책기조를 보였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오즈본 장관은 이날 하원에서 기업활동을 살리기 위한 법인세 1%포인트 추가 인하와 1,300만파운드(약 219조원) 규모의 주택자금대출보증, 공공부문 지출삭감 등의 내용을 담은 예산계획을 발표했다.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들은 이 같은 방안이 1970년대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졌던 영국경제를 되살린 대처 전 총리의 정책을 답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예는 부동산활성화 대책이다. 오즈본 장관은 50만채 이상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기 위해 1,300억파운드(약 220조원) 규모의 대출을 보증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신규 주택 구매자에게는 집값의 20%까지 무이자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텔레그래프는 오즈본 장관의 이 같은 '구입지원(Help to Buy)' 구상이 대처 전 총리의 '구입할 권리(Right to Buy)' 프로그램의 발자취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처 전 총리는 100만채 이상의 공용주택을 임대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하는 등 주택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자산보유 민주주의'를 추구한 바 있다.
법인세를 비롯한 감세정책도 대처리즘을 연상시킨다. 오즈본 장관은 "영국은 기업경영에 열려 있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겠다"며 법인세를 1%포인트 추가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2011년 현재 28%인 법인세를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21%로 낮출 예정이었으나 2015년에 이를 20%로 추가 인하할 방침이다. 또 45만개 영세기업에는 직원 국민보험료를 면제하고 유류세와 맥주세 3% 인상계획은 철회하기로 했다.
대신 학교와 병원을 제외한 공공 부문 지출은 2015년까지 115억파운드 삭감하고 공공 부문 임금을 연 1% 인상으로 고정하기로 했다. 경기침체 상황에서의 긴축에 대한 여론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긴축재정을 고집하겠다는 것으로 이 역시 노동계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민영화 등 공공 부문 개혁을 추진한 대처 전 총리의 '뚝심'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데일리메일은 "여인은 되돌아가지 않는다(the lady's not for turning)"라는 대처의 유명한 선언을 인용해 정부의 예산계획에 대처리즘이 반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처 전 총리는 재임 당시 노조의 파업이 거세지자 이 같은 말로 개혁에서 후퇴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날 오즈본 장관의 예산계획 발표에 반발해 영국에서는 최소 9만여명의 공무원이 참가한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다.
이날 오즈본 장관이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의회 발표에서 영국을'열망의 국가(Aspiration nation)'라고 칭하는 등 '열망'이라는 단어를 16번이나 사용한 점 역시 대처리즘을 의식한 발언으로 분석됐다.
다만 이 같은 대처리즘 정책회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키워 결국 또다시 경제의 발목을 잡은 대처의 주택소유 지원정책을 재도입한 데 대한 우려의 시각이 많다. 에릭 브리턴 패덤컨설팅 이코노미스트는 "주택대출에 보조금을 주는 방안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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