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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2년 우리나라는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었다. 중국과 정식 수교를 하면서 취한 조치였다. 당시 너무 화가 난 대만은 우리나라와 중국 간 수교를 하루 앞둔 그해 8월23일, 먼저 단교를 통보해왔다. 그 이후 대만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됐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와 대만 간 투자보장협정(BIT) 체결 추진은 의미가 남다르다. 단교한 지 꼭 20년 만에 '경제 수교'의 길을 여는 작업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두 나라는 국교만 맺고 있지 않을 뿐이지 서로 밀접한 관계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대만에 182억596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수출 비중이 6번째로 높다. 수입은 146억9,358만달러로 전체 11위 수준이다. 지난해 관광을 통한 상호 방문자 수만 해도 약 66만명에 달한다.
◇FTA 효과 원하는 대만=양국 간 BIT에는 대만이 보다 적극적이다.
1990년대 중국의 본격적인 부상 이후 대만은 제대로 된 수교국이 없다. 이는 자유무역협정(FTA)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무대에서 대만은 정식 국가가 아닌 경제 단위 정도여서 FTA 시장에서 외톨이다.
문제는 대만도 우리나라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점이다.
경쟁국이 FTA로 경제영토를 늘려나갈 때 대만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과의 BIT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에 이어 올해 3월에는 세계 제1의 시장인 미국과도 FTA를 발효시켰기 때문이다. 즉 대만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지어 수출할 경우 관세인하 같은 FTA 효과를 간접적으로 누릴 수 있다. 대만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교역규모도 큰데다 이 같은 이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진출이 이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BIT가 맺어져 있지 않아 대만 업체가 제대로 국내에 진출한 사례가 없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만의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투자 규모는 1,400만달러다. 지금으로서는 미미하지만 BIT가 체결될 경우 대만의 대한(對韓) 투자는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대만 기업들이 FTA 효과를 기대하고 한국 투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BIT가 체결돼 투자에 따른 보호판이 만들어지면 실제 투자를 크게 늘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차이완(China+Taiwan) 시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최근 들어 양안 관계가 개선된 것도 두 나라가 관계개선에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 한 요인이다.
2010년 중국과 대만은 FTA의 한 종류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기도 했다. 중국이 큰 틀에서 대만 경제를 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만 경제의 확장은 중국에도 도움이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대만과 우리나라의 관계개선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올 4월에는 민간협정을 통해 김포와 대만 쑹산 간 하늘길이 다시 열렸다. 아울러 이달부터 양국은 무비자 체류기간을 기존의 30일에서 90일로 연장, 시행하고 있다.
◇체결방식은 고민=다만 정부는 대만과의 BIT를 어떤 형식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편의에 따라 대만을 나라라고 부르지만 실제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만과 BIT를 맺게 되더라도 정식 국가 간에 체결하는 '조약(Treaty)'이 아닌 '협약(Agreement)'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이 대만과 BIT를 맺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것도 참고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표현과 형식만 달라질 뿐이지 실질적인 내용은 BIT를 그대로 하게 되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현재 정식 국가가 아닌 곳과 협정을 추진한 사례가 없어 이에 대한 방식을 면밀히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비밀 협상 논란일 듯=대만과의 BIT는 체결방식 외에 정부의 미공개 추진 방식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정부 차원의 BIT를 추진하면서 이를 미공개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비밀 협상'이다.
예를 들어 3월에 가서명을 마친 한중일 BIT은 1차 협상 개최 때부터 외교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같은 과정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양측이 협상 자체를 비공개로 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이어 대만과의 BIT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처리하면서 외교통상 라인의 '밀실주의'가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상대방이 있고 민감한 정보를 다룬다는 외교 업무의 특성상 비밀을 최대한 지킬 필요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에는 외교 라인 쪽에서 편의주의 식으로 정보를 독점하는 것처럼 비쳐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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