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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공연, 관객눈높이 맞춰라
입력2004-06-10 16:19:31
수정
2004.06.10 16:19:31
신 정 섭 <문화레저부장> shjs@sed.co.kr
올 여름 오페라와 뮤지컬 등 대형공연이 유난히 많다. 뮤지컬만 해도 여름에 17편이나 공연된다. 50억~100억원을 들인 블록버스터 수입 뮤지컬이 그것이다. 예전에는 1년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웠던 공연들이다. 문화의 다양화ㆍ고급화란 면에서 보면 다행한 일이다.
오페라 입장료 턱없이 비싸
그런데 이들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을 사본 적이 있는가. 너무 비싼 값에 크게 놀랐을 것이다. 영화 7,000원, 연극 2만원 내외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소위 ‘고급공연(?)’은 다르다. 오페라 티켓 한 장이 40만~50만원이다. 뮤지컬도 10만원 선이다. 티켓 값이 ‘강남 집값 뛰듯’ 올라 있다. 왜 이렇게 비싸야만 할까.
우리 경제는 장기침체 국면을 보이고 있다. 특히 내수경기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다. 그럼에도 공연예술계는 반대로 가고 있다. 즉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대형공연이 넘친다. 티켓 값도 수십 만원씩이나 된다. 그렇다면 공연시장이 활황인가? 아니다. 불황도 지나 공황상태다. 문화계의 깊은 침체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갤러리가 썰렁하다. 그림도 전혀 팔리지 않는다. 매일 저녁 수십 곳에서 열리는 각종 공연도 마찬가지다.
뮤지컬의 경우를 보자. 현재 뮤지컬은 ‘침체 속의 공급과잉’이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연 500억원 정도다. 미국 브로드웨이가 우리 보다 시장규모가 30여 배가 큰 1조7,000억원이다. 이런 곳에서 조차 연 30~40편의 작품만 무대에 오른다. 우리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4월 말까지 공연된 뮤지컬은 줄잡아 20여편이나 됐다.
이 중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3편에 불과하다. ‘캣츠’ ‘맘마미아’ ‘명성황후’가 그것이다. 맘마미아는 4개월간 2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또 명성황후도 7주간 공연에서 12억원의 순익을 거뒀다. 관객 18만명을 동원한 캣츠는 총 제작비 150억원, 매출 180억원으로 장부상 30억원의 수익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80% 이상의 뮤지컬들이 관객들로부터 외면 당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다시 올 여름에 ‘캬바레’ 등 무려 17편의 뮤지컬이 무대에 오른다. 수익성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도 입장료를 저렴하게 하겠다는 공연기획사는 단 한곳도 없다. 보다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겠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는 국내 공연예술계의 거품과 허위의식 때문이다. 이른바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거품심리가 문제다. 이 심리를 이용, 한탕주의를 꾀하는 공연까지 이어지면서 공연시장 왜곡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안 팔려도 좋다, 이왕 안 팔릴 것이라면 값으로라도 체면을 유지하자는 ‘허위의식’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체면치레와 허위의식이 바로 관객의 발길을 막고 있다. ‘관객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이다. 그림이 안 팔린다, 공연에 박수치는 관객이 없다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문화계 스스로 발등을 찧은 결과다. 스스로 관객과의 벽을 탄탄히 쌓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림이 안 팔리는 것은 고객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에는 있는 팬 클럽이 클래식엔 없다. 그 잘난 체면과 대학을 의식한 엄숙 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관객 중심의 문화예술 경영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 순수예술이 살 길이다. 국가 정책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기업의 지원도 한계가 있다.
거품심리.허위의식 없애야
배고픈 사람이 뛰어야 하고,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이치와 같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관객과 호흡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공연장은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친근하고 가까운 곳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에 관객을 ‘모실’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고객중심 경영’에서 배워야 할 ‘관객중심의 문화예술 경영’이다. ‘
관객을 울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배우가 수 천명 앞에서 연기할 재간은 없다. 관객의 눈은 걸음마 단계인데 실험성만 강조한 미술이 전체를 지배해서도 안 된다. 더구나 작가 자신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세련되게 보이기 위해 독어 혹은 프랑스 원어로 써놓은 팸플릿이나 ‘음악논문’ 같은 연주회 프로그램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예술의 전당ㆍ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정도에서나 연주해야만 교수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준다니 이 웃지 못할 후진국형 관행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이런 허위의식 때문에 가격 거품이 끼어 든다. 이 거품은 순수예술과 대중과의 깰 수 없는 벽이 된다. 수십 만원짜리 뮤지컬이나 오페라 한편 감상하자고 몇 날 며칠을 굶을 관객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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