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불이행자중 상당수, 워크아웃만으로도 충분… 내년 공론화통해 입법화
중소도시 서민들 대상 '찾아가는 서비스' 확대… 지원 사각지대 줄일 것
금융소외층 복지 위해 소액대출 재원 늘리고 취업알선 더욱 활성화
"내년이면 설립된 지 벌써 10년째입니다. 차제에 신용회복지원제도의 밑그림을 새로 그려나갈 계획입니다.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기 전에 '사전상담제도'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이종휘(64ㆍ사진)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3일 서울 명동 신용회복위원회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내년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퍼즐을 맞추듯 신복위의 청사진을 그려갔다. 신복위는 지난 2000년대 초반 국가를 흔든 카드사태를 계기로 서민금융 몰락을 막고 채무불이행자 구제를 위해 2002년 설립됐다. 지금까지 개인 워크아웃 누적 신청자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국내 신용회복을 위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 위원장은 설립 10년을 맞아 새로운 정체성과 사업 비전을 모색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우리은행장을 거쳐 4월 취임한 이 위원장은 탁월한 금융감각을 자랑한다. 이 위원장이 내년 도입을 목표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사전상담제도. 신복위와 금융소외 계층에 대한 이 위원장의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신규 프로젝트이다. 개인들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기 전에 신복위의 채무조정제도 상담을 의무적으로 거치게 하는 제도로 조금 더 많은 채무불이행자를 구제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전체 채무불이행자 중 60% 이상은 법원의 개인파산 및 회생제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워크아웃으로 충분히 채무조정이 가능한 사람도 많아요. 사전상담제도가 이들의 경제적 재기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종의 구제장치가 될 것입니다." 제도 도입을 위해 갈 길은 아직 멀다. 이미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전상담제도가 의무화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위원장은 서두르지 않고 내년에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입법화에 노력하겠다는 전략이다. 내년에 개최될 신복위 창립 10주년 기념 세미나가 첫 걸음이다. "사전상담제도 도입의 필요성은 물론 이번 세미나에서 수렴된 내ㆍ외부 의견이 향후 신복위의 정체성과 비전을 수립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올해 이 위원장이 신복위를 진두지휘하며 가져온 변화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찾아가는 채무상담 서비스'이다. 8월부터 강원과 경기ㆍ충청 지역 등 중소도시 서민들을 대상으로 신용회복제도 상담을 550건가량 제공했다. 이는 기존 신복위의 전국 23개 지부와 23개 출장상담소가 주로 서울이나 광역시 등 대도시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는 데 착안한 서비스이다. "마음 같아서는 지방 중소도시에도 지부를 개설하고 싶지만 고정비용이 많이 들어 우선은 내년 상반기 성남지부 한 곳만 개설을 준비 중입니다. 아쉬운 대로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를 활용해 신용회복지원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싶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섬세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위원장은 전략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저돌적인 '뚝심'을 보여줄 때도 있다. 올해 소액대출 재원을 대폭 늘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신복위에서는 채무조정자들의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 소액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제도가 도입된 2006년부터 올해 9월까지 4만8,000여명에게 1,500억원가량을 대출해줬다. 건당 평균 대출금액은 300만원 선이지만 급전이 필요한 채무조정자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돈이다. 이 위원장은 취임 직후 소액대출 재원을 확대해 더 많은 채무조정자들에게 생활자금 대출을 지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에 시중 금융권을 직접 돌아다니며 소액대출 재원을 위한 기부를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은행권 태도가 미온적이었다. 결국 이 위원장은 정면승부 전략을 택했다. 7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망우동에 자리한 미소금융(무담보 저금리 소액대출) 지점에서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할 때 함께 참석한 이 위원장이 '소액대출 재원 확보를 위한 은행권 기부'를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요청했던 것이다. 당시 즉석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으로부터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돕겠다"는 확답을 받아 단숨에 재원 문제를 해소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에 기회를 포착해 사고 아닌 사고를 쳤는데 그 게 통했습니다." 승부의 순간을 회상하던 이 위원장은 당시 에피소드를 계기로 지금까지 모두 400억원의 기부금을 소액대출 재원으로 확보했다. 또 연말까지는 100억원이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다. 새해에는 출범 10주년에 맞춰 신용회복위원회의 CI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채무불이행자나 과중채무자들이 좀 더 많이, 거리낌 없이 신복위를 찾을 수 있도록 변신하겠다는 의도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응답자 중 51%만이 신복위를 알고 있거나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업력에 비하면 낮은 인지도 수준입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신복위를 정부 기관으로 생각하거나 복지사업자로 생각하고 있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신복위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이 위원장은 기회만 되면 신복위의 주요 사업을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신복위의 핵심 사업은 채무상담 및 조정, 신용관리교육, 취업알선, 생활비 소액대출 등 4개 사업을 축으로 두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최근 재원을 확보한 소액대출과 취업알선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신복위가 지원하는 취업알선은 채무자들의 효과적인 채무상환을 도와주겠다는 취지로 2004년 도입됐다. 이후 올해 9월 말까지 모두 2만400명의 채무조정자들이 신복위를 통해 일자리를 마련해 재기를 꿈꾸고 있다. "기존에 소액대출이나 취업알선 등 금융소외 계층의 복지 및 생활여건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더욱 확대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 위원장 취임 이후 사회공헌 활동도 부쩍 강화되고 있다. "넓게는 우리 위원회가 하는 모든 일들이 사회공헌활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 실정에 맞게 채무조정 신청인들이 더 많이 도움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서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해나갈 계획입니다." 사회공헌활동은 신복위의 현실에 맞춰 실천 가능한 아주 작은 부분부터 시작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9월 임직원 및 신용회복 신청인들과 함께 '희망사다리 헌혈캠페인'을 실시해 헌혈증서가 필요한 신청인에게 기증했다. 또 올해 말부터 임직원 급여의 끝전을 모아 매월 100만원가량, 1년에 1,200만원의 기금을 모으기로 했다. 여기에 신복위 경비를 매칭 방식으로 출연해 신용회복지원 신청자 중 부득이하게 공적부조를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 가정에 생활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복지소외 위기가정 돕기 캠페인 외에도 내년부터 신용회복신청인 무료건강검진 등 채무상담에서부터 복지소외층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해나갈 예정입니다. 신복위 임직원과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 참여자가 함께 새로운 사회공헌활동 모델을 정립해 나갈 겁니다." 이 위원장은 채무불이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누구나 채무불이행자가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한번쯤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자책하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세요.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나즈막한 어조로 신복위의 역할과 과제를 설명했지만 목소리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때문에 마지막 당부의 말도 틀에 박힌 일반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확신에 찬 호소로 전달됐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단순히 '금융'이 아니라 사회의 구제장치를 만드는 일이자 소외된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소중함에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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