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현대인들이 먹고 사는 걱정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핵심적인 주제는 ‘지위 불안(Status Anxiety)’. 특정 커뮤니티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은 얻었지만, 그 지위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커뮤니티의 수준에 부합함을 알리고자 과소비를 하거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외부 활동, 관직 등을 통해 스스로 격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열심히 사는 방법’으로 지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성공을 이룰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우선 항상 불만족 상태에 있기 때문에 성장하더라도 자신의 위치가 정말 개선되었는지 판단하기 힘듭니다. 또 커뮤니티의 다른 구성원들과 초기 조건이 달랐기 때문에 생기는 편견도 존재합니다. 겉으로는 그의 멤버쉽을 받아주지만, 마음 속으로는 ‘벼락 출세한 자’ 또는 ‘근본은 별로지만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이 오르더라도 기존 조직에서 만들어 둔 ‘유리 천장(Glass selling)’에 의해 인정받기 어려운 상태인 것이죠.
물론 반대의 논거도 있습니다. 문화경제학자들은 16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작곡가 200여명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작품 생산성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변수가 지위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각도는 조금 다르지만 전쟁, 사회 내의 갈등, 혁명과 같은 거시적인 변수들과 그들이 속한 집단 내부에서의 불안정성이 사실은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공교롭게도 많은 예술창작자들이 모여 살던 파리(Paris)가 그런 공간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파리는 복잡한 여러 커뮤니티 간의 협력과 갈등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또 정치, 경제적인 변동성이 많은 작곡가들로 하여금 사회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새로운 작품을 쓰려는 동기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등 따시고 배부르면 글 못쓴다’는 유명 문인들의 말도 일리가 있는 듯 합니다. 창의성은 결코 편안한 환경에서 만들어지지는 않기에, 지위 불안을 통한 적절한 긴장 상태가 요구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조직에서의 비정규직 문제들을 보면 지위 불안이 창의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인 것 같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똑같은 봉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양사, 행정실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육 공무원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 이들의 ‘방학 생계 보장’ 요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위 불안이 과할 경우 최소한의 인간적 안전을 보장하는 수준까지 훼손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 전 상공회의소가 한국의 노동생산성에 비해 임금이 다소 과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서 공분을 산 적이 있었죠. 경영학을 전공했고, 창업에 참여해 본 기자도 그 취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업무현장의 고연봉 고복지는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임금 자체는 하방경직성이 있고, 다양한 집단들이 ‘그럴만하다고 여기는 감정’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올려주더라도 사주나 경영자가 칭찬받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오히려 비정규직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함으로써 잃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이들이 조직 안에서 큰 비중을 할애해야 하는 일을 맡고 있는 기층 단위의 근로자들이라고 생각해봅시다. 분명 사기가 떨어지고 되려 열심히 일 할 유인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경영학자들은 조직 차원의 여유자원(Slack) 확보를 통해 비상시에 사람에게 해야 하는 투자, 또는 기술 투자 등의 가능성을 늘리라고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적절한 평가를 거친 비정규직의 유연한 정규직화, 또는 적정 수준의 임금 보장 등은 전략적 조직 관리의 대책이지 ‘온정’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비정규직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턴 사원들에 대한 ‘열정 페이’도 화두가 됐습니다. 한참 스킬이 모자란 취업 준비생이 ‘배우는 과정’이니 무급으로, 또는 간단한 교통비로 보상을 받아도 불평하지 말라는 관점이 반영된 처우입니다. 남들은 돈도 내고 배우는 판에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밥값이라도 버니 이 얼마나 좋은 대우냐는 논리죠. 물론 젊은 친구들에게 적절한 지위 불안과 내일의 불확실성은 더 열심히 하는 외재적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어른이나 선배 세대는 그것보다 훨씬 덜 받고도 즐겁게 출근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직장에 소속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회비용을 지출한 선택입니다. 그가 다른 곳을 택했더라면 받게 될 처우, 중요성 등을 감안한 일종의 ‘희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지위 불안’이 진정한 창의성과 혁신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최소한의 조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iluvny23@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