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
이젠 최빈국서 주요 공여국으로 성장
인도주의·성공스토리 적극 전파할 때
6.25 전쟁 당시 6,000여명의 황제 근위대를 파병해준 나라. 미국, 유럽이 아닌 한국을 따라야 할 발전모델로 삼고 있는 정부. ‘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 개관식에서 새마을 운동을 한국어로 부르며 감사를 표하는 학생들. 필자가 이번에 방문한 아프리카 대륙의 형제 나라, 에티오피아다.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 본부 소재지이자,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가 위치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 외교의 중심지다. 이곳에서 며칠 전 인류의 미래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국제행사가 열렸다. 이번에 개최된 제3차 개발재원총회는 개도국들의 개발에 필요한 재원 확보방안과 다양해진 개발 관련 행위자들간 파트너십에 관한 구체 행동계획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2002년 몬트레이, 2008년 도하에 이어 세번째로 개최된 이번 개발재원총회는 오는 9월 뉴욕 개발정상회의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지속가능개발 목표 마련은 금년에 창설 70주년을 맞는 유엔의 최우선 과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표적 개발 성공사례인 한국이 이번 회의에 참석해 개발협력 경험을 공유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2000년 유엔특별정상회의가 빈곤타파를 위해 마련한 새천년개발목표(MDG)의 달성시한이 금년말로 다가온 가운데, 국제사회는 단순히 MDG-II를 뛰어넘는 야심찬 지속가능개발목표 마련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오는 9월 유엔총회 계기에 마련될 지속가능개발목표는 경제, 사회, 환경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발전략이 될 것이다. 필자는 금번 총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에서 지속가능개발 목표를 도출하는 것은 인간존엄을 위한 우리 세대의 책무임을 강조했다.
개발분야에서 한국의 역량과 경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전세계 7,00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한 상황에서 에티오피아 총리는 우리 대표단의 도착 첫날에 필자와 한 시간 가까운 면담을 갖고 한국의 개발경험을 벤치마킹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번 출장 중 방문한 명성병원은 민간차원의 대표적인 보건협력 사례로 아디스아바바에서는 한국병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연간 10만여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찾는다는 이 병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공공외교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필자는 교육 분야에서의 개발협력이 우리 외교의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것임을 확인했다. 이번 회의기간 중 ‘교육을 통한 개발사례’ 고위급 행사에서는 유네스코 사무총장, 글로벌 교육 파트너십 이사장과 필자 등 4명이 대표 연사로 참석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개발 전문가인 제프리 삭스 교수는 이 자리에서 한국을 일컬어 “교육이 개발을 가장 성공적으로 견인한 사례”라고 하면서, 한국이 교육을 통한 개발 증진에 있어 지도적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했다.
국제사회가 연이은 분쟁, 대규모 재난, 에볼라와 같은 전염병의 확산 등으로 심각한 인도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인도주의·개발협력 외교는 아프리카와의 협력을 가일층 확대하는데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필자는 금년 12월 에티오피아를 다시 방문해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처음 열리는 각료급 한-아프리카 포럼을 주재할 예정이다.
이번 에티오피아 방문기간 중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맑은 눈에서, 명성병원에서 만난 환자들과 꼭 잡은 손에서, 한국의 성공 스토리를 배우려 하는 많은 대표단들의 바람 속에서, 필자는 최빈국에서 주요 공여국으로 성장한 우리가 이제 세계시민(global citizen)으로서 국제사회를 위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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