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말은 뉴욕양키스의 전설적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야구 명언이다. '장갑을 벗어봐야'승부를 안다는 골프처럼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천하의 야구광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요기의 명언을 인용했는데 요즘 딱 들어맞는 말이다.
'야구는 9회 말 투 아웃부터'라지만 불행히도 박재완 팀에겐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5년 전 내건 이른바 '747 공약(연간 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도약)'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성장률은 5년 평균 2.9%로 반타작도 못했다. MB노믹스의 설계자인 박 장관에게 남은 공격 기회는 아직 10여일 남았지만 패색이 짙어진 지 오래다. 경제 성적표만 놓고 본다면 박 장관은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1년 내내 '상저하고' 타령하다 경기 상황까지 오판했다.
경제와 민생 실패의 모든 책임을 마지막 구원투수에게 죄다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5년 내 747 점수를 내는 것은 애초부터 무모한 일이었다. 박 장관 말마따나 그가 구원할 당시는 '무사 만루 수비'상황이었다. 유럽 재정위기의 불길이 치솟는데다 살인적인 물가폭등까지 겹쳤다. 2명의 전임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와 악전고투 끝에 콜드게임만은 막았으나 넘겨준 점수차는 너무나 컸다.
그런데 성장지상주의 MB노믹스를 설계하고도 단기 부양의 유혹을 뿌리쳤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신 나라곳간 지킴이를 자임했다. 성장률을 0.1%포인트라도 더 끌어올리려고 나설 법도 한데 왜 그랬을까. 일단 유럽 재정위기를 반면교사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어쩌면 747 공약 달성은 구원등판 때부터 작살나버렸고 금과옥조인 감세정책마저 결딴나자 건전재정 사수가 마지막 소임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야 어떻든 2%대 저성장에 추경 유혹까지 떨쳐버린 것은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균형재정 달성 목표는 무위에 그쳤지만 재정 건전성 기조를 유지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사실 우리 경제는 5년 내내 대외 위기에 맞섰다. 경제 규모를 키우는 공격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외 악재에 버티는 수비에 급급했다. 그래도 저성장의 리스크를 무릅쓰고 재정 건전성 하나만큼은 악착같이 지켜왔다. 어렵게 지킨 나라살림은 기초체력 증강에 쏟아 재도약의 위한 디딤돌을 삼을 수 있을 터.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 엔진을 덥히는 것도 재정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초장부터 복지공약 이행에 나라곳간을 허물 태세다. 새 정부 참여 인사와 비정무직 공직자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라곳간 지킴이를 자처해온 박 장관의 침묵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복지공약에 검증의 칼을 댄 것은 만용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문제가 있는데도 외면하는 것은 책임 있는 처사가 아닐뿐더러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박 장관은 이달 말이면 물러난다. 대통령 단임제 도입 이후 마지막 경제팀장 가운데 역대 최장수(21개월)라고 한다. 성적에 비해 제법 오래 등판한 셈이다. 새 정부의 실책을 줄이도록 고언 하는 데 총대를 멜 인물은 현실적으로 박 장관밖에 없을 게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복지공약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밝히는 일이 남았다. 직접 증세 없는 복지공약 이행이 가능한지 말이다. 마침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기재부에 공약이행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것은 기회다. 지난해 4월 기재부 복지 태스크포스의 결론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복지공약 전면 이행을 위해서는 추가 증세 또는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이는 미래 세대의 부담 증가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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