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간) 러시아는 독일 베를린에서 유럽연합(EU)의 중재로 진행된 우크라이나와의 가스 공급 협상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진전을 끌어냈다. 귄터 외팅어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협상 후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올겨울 천연가스 공급을 재개하는 쪽으로 잠정 합의했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에 연말까지 가스 대금 31억달러를 지급하면 가스프롬이 다음달부터 내년 3월까지 천연가스 50억㎥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합의안은 양국 정부의 승인을 거쳐 이번주 중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가스프롬은 지난 6월 가스 대금 체납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금을 미리 지급해야만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며 공급을 중단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이후 폴란드·슬로바키아 등으로부터 가스를 공급 받아왔다.
합의안을 살펴보면 올겨울에 공급될 천연가스에 대해 선불제를 실시하며 밀린 가스 대금은 EU의 보증 아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빌려서 내기로 하는 등 러시아에 상당히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합의가 이뤄진 데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가스 공급이 끊기면 겨울을 버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한 해 필요로 하는 천연가스 사용량은 500억㎥로 추산되며 이 중 360억㎥는 국내 생산 및 비축량으로 충당한다 해도 겨울을 나기에는 모자란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제한된 가스 공급 등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월동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일본에 대해서도 에너지를 지렛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이 동시베리아의 코빅타와 차얀다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중국에만 수출하기로 했으며 일본과 이 지역 가스전의 공동 개발 및 일본으로의 공급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27일 보도했다. 두 가스전의 매장량은 3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가스프롬은 5월에 중국과 가스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는 24일에 발표된 일본의 대러 추가 제재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이날 러시아에 신규 무기 수출 및 무기 기술 제공을 제한하고 러시아 은행 5곳에 신규 증권 발행을 금지하는 제재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미 3월부터 순차적으로 비자면제협정 협상 중단, 비자발급 금지, 자산동결 등의 제재도 실행하고 있다. 이 같은 제재에 대해 알렉세이 메드베데프 가스프롬 부사장은 "제재의 근본 목적이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데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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