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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싹 못틔우고 이슬로 사라져 간 평화통일의 꿈

■ 조봉암 평전 - 잃어버린 진보의 꿈(이원규 지음, 한길사 펴냄)<br>이승만 정권 때 국보법 위반으로 첫 '사법살인'<br>대법 무죄 인정 불구 아직 배상·명예회복 먼 길


법정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조봉암의 모습들. 그는 결국 사형이 확정됐다, /서울경제DB

1959년 7월 사형 집행을 앞둔 죽산 조봉암은 아끼는 후배 윤길중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성급히 생각하지 말게. 우리가 못한 일을 먼 훗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 그러면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60여년 전 책임정치ㆍ수탈 없는 경제ㆍ평화통일 세 가지를 주장하며 나라를 위해 일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 헌정 사상 첫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의 평전이 출간됐다.

저자는 중국ㆍ러시아ㆍ일본 등 항일 유적지를 20여 차례에 걸쳐 답사하고 오랫동안 르포를 연재해온 이원규 소설가다. 그는 이미 '약산 김원봉 평전'과 '김산 평전' 등 사회주의 독립투사들의 평전을 집필한 바 있다. 이 책은 100여장의 사진과 300여개의 주석, 200여개의 참고문헌을 수록하고 있어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그렇게 죽산의 존재를 한국독립운동사와 공산주의 운동사 속에 되살려 놓았다.

죽산은 강화도에서 태어나 젊은 날 3ㆍ1운동에 참여해 옥살이를 하고,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으로 참여했다. 상하이 망명 투쟁 중 체포돼 7년간 또 옥살이를 하고, 해방 이후에는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입안한 건국 공로자였다. 이후 국회부의장을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과 두 번 대결해 차점으로 낙선됐다.

이런 조봉암이 구속된 이유는 간단했다. 이승만 정권이 위협적인 정적을 제거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의 평화통일론은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이론과 같은 용어이고, 유엔 감시하의 남북 총선거 주장도 당시 정부의 북진통일과 달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러한 이유보다 더 암담했던 것은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누구 하나 이를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양심선언이나 유감 발언조차도 없었다. 심지어 2심을 맡은 판사가 3심까지 맡은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사후에도 비참했다. 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했지만, 비공개로 하루만 장례를 치르게 하고 묘비도 허가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령 규정을 근거로 경찰이 으르렁거렸고 언론 보도도 같은 근거로 금지됐다.



2007년 9월18일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조봉암의 사형이 구체적 근거 없는 정치탄압으로,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또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2011년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배상도 명예회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죽산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137억원 규모의 배상 소송에, 결국 30억여원 수준의 보상 판결이 났다. 또 국가보훈처에서는 일제 때 국방성금을 낸 기록이 있다며, 그 미심쩍은 근거로 서훈을 유보했다.

이제 당시 죽산과 함께 했던 진보당원들도 이미 2008년을 마지막으로 모두 세상을 떴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사람들은 모여 54주기 추모제가 치러지고, 죽산의 동상 건립을 위한 모금도 이어지고 있다.

인천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8,000여명이 돈을 보내 7억여원이 모였어요. 하루는 젊은 부부가 돈을 들고 왔어요. 남편 몫, 아내 몫, 큰아이 몫, 작은아이 몫으로 나눠 내며 이름을 모두 넣어달래요. 아이들한테 정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알게 해주고 싶어서라고 했어요."

새 정부가 출범한지 보름이 지난 지금도 정부조직법 협상은 뒤로 한 채 기싸움만 벌이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이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다. 보수니 진보니, 방송 공정성이니 미래창조니 하는 것들 다 떠나서.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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