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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책 오류의 함정
입력2006-11-09 16:37:33
수정
2006.11.09 16:37:33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그의 저서 ‘경제원론’ 첫 장에서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설명했다.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부분적으로는 논리가 성립하지만, 전체로는 오류에 빠지는 경우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한 농부가 배추를 많이 수확해 돈을 많이 벌자 이듬해 모든 농가가 배추를 심어 길렀더니 배추 값이 폭락해 손해를 보았다면 구성의 오류에 해당한다. 스포츠 경기를 잘 보기 위해 한 사람이 일어서면 그는 잘 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일어나면 모두가 잘 볼 수 없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의 오류다.
작금의 부동산시장은 바로 ‘구성의 오류’에 빠져 있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확산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이 집 사기에 집중되고 금융기관들이 부동산을 가장 안전한 담보로 믿고 경쟁적으로 대출을 늘렸다.
구성의 오류는 불균형의 과정을 거친다. 배추의 과잉생산, 경기장의 무질서라는 불균형이 오류의 조건이 된다. 부동산시장도 불균형으로 가득 차 있고 조만간 구성의 오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부동산시장의 불균형은 글로벌시장에서 발견된다. 최근 부동산 붐은 한국만의 현상을 넘어 글로벌 현상이다. 국제적으로 저금리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은 물론 중국ㆍ동남아시아ㆍ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부동산 투기붐이 불었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미국에서는 지난 9월 이후 주택시장이 급락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붐버스트(boom bust)의 흐름이 가속화하면 한국 부동산만 홀로 상승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80년대 말, 한국에서도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가 글로벌 사이클과 동시에 가라앉은 적이 있다.
국내 자금시장의 불균형은 유동성 쏠림 현상이다. 며칠 전 금융감독원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한목소리로 금융권의 쏠림 현상을 걱정하고 감독 강화를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세금을 무겁게 하고 주택 공급을 늘리고,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해도 매달 수조원의 뭉칫돈이 추가로 부동산시장에 흘러가 투기를 조성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거리의 아파트 가격보다 두시간 이상 거리의 아파트가 비싼 것은 불균형이 심화된 탓이다. 효용성이 가치와 가격을 형성하지 않고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이 시장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경제성장률ㆍ물가ㆍ금리 등 어떤 거시 통계보다 높은 것은 불균형이 이미 적정선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오류는 또 다른 오류를 낳는다. 오류를 줄이려면 원인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적절한 처방이 필요하다. 유동성 확장이 부동산 투기의 원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서 해법을 찾으려면 ‘인과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최근 부동산 붐은 유동성 확대보다는 돈의 쏠림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9일 금리를 올려 부동산을 잡으라는 일부의 요구를 뿌리치고 콜금리를 유지한 것은 이런 함정을 피한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돈의 쏠림 현상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에 들어가는 돈의 흐름을 조이되 그 강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대출 총량규제와 같은 급격한 조치는 부동산시장을 잡을지는 몰라도 금융시스템을 위험에 노출시킬 우려가 크다. 15년 전 글로벌 부동산 붐이 붕괴되면서 일본에서는 금융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장기침체의 원인을 제공하고 미국도 씨티은행과 저축대부조합(S&L)에 연쇄적으로 경영위기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은행수익이 얼마나 떨어질지를 시뮬레이션 하고 매일 시장을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다 금융시스템을 흔들 경우 그 정책은 더 큰 오류를 범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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