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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변호사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판검사 경험이 없는 사내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서자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대형 법무법인(로펌)과의 관계에서 '갑' 행세를 하고 있다.
사내변호사란 기업이나 단체에 자체적으로 고용돼 있는 국내외 변호사를 뜻한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들어 삼성 등 대기업과 외국계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사내변호사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사내변호사가 기업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기업의 소송 대리나 자문을 맡을 로펌을 선정할 때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사장이나 고위 임원들이 인맥을 통해 로펌을 고르는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사내변호사들이 전문성과 승소 가능성을 고려해 적합한 곳을 추천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로펌이 사내변호사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10대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사건을 수임할 때 사내변호사가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내변호사에게 홍보를 열심히 해야 한다"며 "최근 2~3년간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형 로펌의 대표는 "기업 임원에 오른 사내변호사는 로펌 선임 시 적어도 어느 로펌이 선임되지 않게 할 수 있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로펌으로선 말리는 시누이가 더 무서운 사례가 꽤 생긴다"고 지적했다.
사내변호사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사내변호사가 모여 만든 협회의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 있는 협회로는 주로 외국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인하우스카운슬포럼(IHCF)과 한국사내변호사회(한사회)가 있다. 한사회는 서울 여의도ㆍ강남ㆍ강북의 3개 단체가 지난해 11월 하나의 사단법인으로 합쳐져 생겼으며 8월 현재 823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로펌은 이들 협회에 법인 회원 형태로 가입해 500만원부터 1,000만원에 이르는 연회비를 낸다. 또 협회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주제별 강연도 하고 때로는 스폰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판사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는 "금액 차등은 있겠지만 7~8대 로펌이 연회비를 내는 것으로 안다"며 "별도의 후원금이나 세미나 장소를 제공하는 로펌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로펌 관계자는 "이제 사내변호사 협회는 '슈퍼 갑'으로 통한다"고 강조했다.
로펌이 단순히 협회의 스폰서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백승재(43) 한사회 회장은 "법인의 경우 연회비 500만원을 받고 있지만 모든 회비는 100% 세금 공제가 되며 로펌 말고 다른 단체도 회비를 낸다"며 "세미나 등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다"고 반박했다.
로펌 관계자도 "아무래도 변호사끼리다 보니 로펌 측과 사내변호사가 말이 더 잘 통하는 면이 있다"며 "사내변호사 커뮤니티 형성에 로펌이 매개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로펌이 지원만 하는 형태의 관계를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판사 출신의 한 로펌 대표변호사는 "기관에서도 변호사를 고용하기 시작한 만큼 앞으로 사내변호사의 영향력은 더욱 세질 것"이라며 "사내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로펌으로선 더 많이 들 홍보비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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