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이듬해인 1897년 보스턴 선수협회(BAA) 주최로 첫 대회가 치러졌다.
이후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를 기념하는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 ‘애국자의 날’에 열려 전 세계를 마라톤 열기에 몰아넣었다.
보스턴 마라톤은 지난 116년간 숱한 기록과 영웅들을 배출하며 규모 면에서도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첫회 대회는 18명의 참가자로 조촐하게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매년 2만명 이상이 참가하고 관람객 수만 50만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마라톤 축제로 자리잡았다.
116회인 지난해 대회 때는 직업 선수와 동호인을 합쳐 2만6,000여명이 참가했다.
100회 대회인 1996년 대회에는 3만8,700여명이 참가신청을 해 이 가운데 3만5,800여명이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이에 따라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국제 마라톤 대회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보스턴은 세계 유수의 마라톤 레이스 중 유독 한국과 인연이 깊은 레이스로도 잘 알려졌다.
서윤복(90)이 1947년 51회 대회 때 24세 나이로 2시간25분39초의 당시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 남승룡(2001년 작고)도 2시간41분10초로 10위에 올랐다.
당시 미국 언론은 ‘기적'이라는 제목의 1면 기사로 식민지 지배를 갓 벗어난 약소국 선수의 우승 드라마를 보도했다.
6.25 전쟁 직전에 열린 1950년 대회 때는 함기용(83)과 송길윤(2000년 작고), 최윤칠(85)이 1∼3위에 올라 한국 마라톤의 기개를 세계에 떨쳤다.
한국은 이후 40년이 넘도록 입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다 1993년 김재룡이 2위, 1994년 황영조가 2시간8분49초의 한국최고기록으로 4위에 오르며 재도약을 했다.
이어 2001년 105회 대회 때는 이봉주가 2시간9분43초의 기록으로 한국에 51년 만에 금메달을 안기면서 한국 마라톤 역사에 또 한차례 정점을 찍었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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