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징계 추진 갈등 부추겨 국감 등 국회 정국도 부담으로
● 소용돌이 KB금융
동반 경징계땐 내부 문제 여전… 노조 "CEO 모두 남으면 투쟁"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늦어지면서 당초 예상됐던 중징계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금융당국과 KB가 모두 퇴로가 없는 외통수로 몰리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동반 경징계'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금융당국도 자칫 상당한 역풍에 휘몰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리한 징계를 밀어붙여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은 물론, 금융회사에 앞으로 영이 설 수 없게 된다. 10월부터 이어지는 국정감사 등 국회 정국도 금감원 입장에서는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다.
KB 역시 당혹스러운 빛이 역력하다. 경징계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두 최고경영자(CEO) 간의 골이 워낙 깊어 지배구조의 문제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측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 몰리면서 금융계 일각에서는 더 큰 혼란을 피하고 KB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당국과 KB가 공생할 수 있는 퇴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 원로는 "제재 수위를 확정하기 이전에 두 CEO 중 한명이 조직을 위해 명예롭게 퇴진하는 대신 남은 CEO에게 힘들 몰아달라고 선언을 하고 대신 당국은 퇴진한 CEO에게도 경징계 조치는 내리는 '정치적 타협'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늦어지는 제재심… 동반 경징계 가능성 거론=금감원은 21일 KB 징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여섯 번째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날도 제재 수위를 확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감사원 개입으로 논란을 빚었던 KB의 고객정보 유출 건이 이번에 아예 별건으로 분류되면서 임 회장에게 사전 통보한 중징계가 힘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감원은 최근 주전산기 교체, 도쿄지점 불법 대출,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과 함께 일괄 제재할 방침이던 고객정보 유출 건을 별건으로 분류해 추가 검토 후 제재하기로 했다.
물론 주전산기 교체 문제가 여전히 임 회장에 대한 제재 안건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임 회장의 '관리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금감원 검사국은 KB가 미국 주총기관인 ISS에 경영정보를 유출했던 사태 당시에도 '관리 책임'을 물어 어윤대 전 회장에게 최초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지만 제재심이 결국 경징계로 수위를 낮췄다.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당국에 직접 보고했던 이 행장에게만 중징계를 내리는 것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양형이 어떻든 상식선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이 때문에 심의위원들도 아직 징계 수위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심 결과에 대해 최수현 금감원장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이럴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CEO 중 한명 선 사퇴 후 경징계론 대두=문제는 회장과 행장에게 모두 경징계가 확정되면서 사실상 '면죄부'가 주어질 경우 KB와 금감원이 마주할 후폭풍이 너무 거세다는 점이다. KB는 수뇌부의 리더십 충돌이라는 심각한 경영변수가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은행 전산 업무의 핵심인 주전산기 교체 문제도 한 발짝도 진전되기 어렵다. 당국 역시 큰소리만 치고 고질적인 KB의 내부 문제를 털끝만큼도 해결하지 못한 꼴이 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CEO 한 명이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라도 사태를 봉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진 사퇴 후 경징계 조치를 할 경우 당사자도 명예를 지키고 조직을 위해 몸을 던졌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낙인 국민은행 노조위원장도 "회장과 행장이 모두 경영진으로 남을 경우 초유의 강경 투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