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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불편한 진실

대통령·여당 반복되는 대립으로 사회적 비용만 눈덩이처럼 커져

보혁 모두 개헌제기 어렵겠지만

고비용 정치구조 혁파 위해선 현행 헌법 고쳐 악순환 끊어내야


새누리당과 청와대 간 내홍의 시발이 됐던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진행 봉을 두드리는 소리는 유달리 컸으며 10여분 남짓한 모두 발언 중 당면 현안인 메르스 관련 발언을 1~2분 정도 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의 발동 배경과 정치권에 대한 작심 발언이었다. '배신의 정치' '국민께서 심판해야' 등의 대목 등 발언 수준도 강성이었지만 회의장 전체 분위기가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이 참석자의 전언이다.

이날 발언의 하이라이트는 새누리당과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원내 사령탑'이라는 표현으로 유 원내대표를 직접 지목했고 그에 대한 불신임과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이를 기점으로 당청은 물론 새누리 당내의 친 박근혜와 비 박근혜계의 대립 양상은 갈등 수준을 넘어서 언론에서 '내전'으로까지 표현될 정도였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 결정에 따라 이번 사태는 일단락되겠지만 새누리당과 청와대 어느 쪽이든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채택한 1987년 개헌 이후 어김없이 터져 나온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의 대립·갈등이라는 맥락 위에 있다. 현재 권력인 대통령과 미래 권력으로 중심을 옮겨 가는 여의도의 여당은 항상 갈등해왔다. 결국 이번 당청 갈등도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둘러싼 친박계와 비박계의 전면전을 앞둔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둘러싼 양 계파는 정치적 사활을 걸고 더 큰 싸움을 벌일 것은 자명하다.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당의 주체세력이 바뀌고 그에 따라 차기 대선 구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집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촛불 시위'로 크게 흔들린 이명박 정부 집권 첫해인 지난 2008년에도 대통령의 주요 측근들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공식 제기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12년 실시된 19대 총선에서는 유력 대선 후보를 둔 친박계에 의해 친이명박계들은 이른바 '공천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역사의 시계는 돌아 내년 총선에서 친박계는 과거 친이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는 길은 이른바 '87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을 바꾸는 길밖에 없다. 권력구조 등 개헌 문제에 관해서 여의도 정치권은 대체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이든 당청 간 갈등과 이에 따른 현직 대통령의 리더십이 급속히 퇴조하는 레임덕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현직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제기하기도, 집권당이 개헌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우리 특유의 정치 구조에 있다. 여기에 개헌을 여권의 장기집권 의도로 보고 비판하는 진영논리가 번갈아 작동했으며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의 유별난 선호 등도 개헌논의를 시작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여권 내부 갈등으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서 보면 개헌논의는 시작돼야 한다. 이번 사태도 결국 박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채 돌기도 전에 발생해 앞으로 국정운영에 일정 정도 차질이 예상된다. 거부권 행사로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새누리당에 대한 장악력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3년이 채 안 된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겠는가. 우리 정치의 진정한 고비용 구조는 '배신의 정치'를 되풀이하게 만드는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시각에서 개헌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온종훈 논설위원 jhoh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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