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으로 모란이 장식된 녹색 비취(翡翠) 위로 금빛 가지들이 뻗어 나왔다. 그 끝에는 원석을 다듬은 석류빛, 살구색, 개나리색의 꽃이 매달려 있다. 그 위로는 푸른 바다빛을 머금은 나비 한 마리가 자리잡았다. 장식미술가 김인숙(73) 국민대 명예교수는 이 같은 자신의 작품들을 '구슬꽃'이라 부른다. 구슬꽃들을 모은 그의 아홉번 째 개인전 '구슬정원'이 16일부터 장충동 서울클럽 한라산룸에서 열린다.
김 교수는 '인생2막'에서 작가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범죄학이 전공인 사회학자로서 국민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그는 2002년 은퇴와 함께 본격적인 구슬공예가가 됐다.
"영롱한 구슬의 빛깔이 좋아 어려서부터 사 모으기 시작한 게 버릇이 돼 외국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골동품점에 들러서 구슬부터 사곤 했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대로 은퇴한 후 매일 밤 구슬을 엮어 장신구를 만들며 말할 수 없는 행복을 찾아냈습니다."
공예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김교수의 실력은 탁월했다. 예술적 취향을 가진 어머니와 세계 각지에서 접한 박물관ㆍ작품들의 경험이 작업에 자양분이 됐다.
2003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은 당시 디자인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서양적 색감과 동양적 미감이 공존하는 그런 독특함은 일찍이 한국에 없던 디자인이었다. 크고 화려하지만 유럽식 바로크ㆍ로코코 장신구와 확연히 달랐으며 중국이나 일본 작품들과도 딴판이었다. 진귀한 재료비에 비해 작품가도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의 작품을 대하는 동서양의 반응도 흥미롭다. 김 교수는 "한국사람들은 하늘색과 푸른빛을 좋아하는데 반해 서양사람들은 '크랜베리 컬러'라며 붉은빛 자주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평창동 가나포럼 스페이스, 삼성동 인터알리아 등 상업화랑에서 연 개인전은 이른바 '대박'을 터뜨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매진(賣盡)을 기록했다. 개인전의 수익금은 장학금과 종교계 기부금으로 사용됐다.
작품 자체의 분위기는 재료의 원산지에 따라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으로 나뉜다.
"서양은 미국ㆍ이탈리아ㆍ핀란드 등 물이 좋은 곳에서 나는 유리가 색이 맑고, 동양은 중국이나 미얀마에서 나온 옥이나 비취가 기본이 됩니다."
거의 매년 꼬박꼬박 개인전을 열어온 작가는 이번 인터뷰에서 "앞으로 1~2년 내에 작업과 전시를 접으려 한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재료확보의 어려움과 '김인숙 짝퉁' 장신구의 확산이 그 이유다. 김 교수는 "중국산 비취와 옥을 중국사람들이 싹쓸이 해 간 탓에 예전에 10달러면 사던 것이 500달러 이상 오른 데다 구할래야 구할 수조차 없다"면서 "게다가 내 작품을 모방한 것들이 많은데 나은 작품이면 좋으련만 내가 쓰는 원석과 달리 물감들인 색유리 모방품이라 볼 때면 맥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언제 또다시 보게 될 지 장담할 수 없는 김인숙의 개인전은 19일까지 열리며 총 85점의 최근작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쌍용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성곤 회장의 큰 딸이며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의 누나로 성곡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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