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지망생들의 가장 큰 착각이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에요. 만화는 정서가 우선이고 그림은 거드는 작업일 뿐이지요. '프리스트'가 할리우드에 팔린 이유도 극적인 내용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미국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만화가 형민우(38ㆍ사진)는 10년이 넘게 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자신은 한번도 만화를 업(業)으로 삼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만화는 영화나 음악처럼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일 뿐이었기에 그는 그림을 잘 그리는 데 집착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1999년 당시 한국 만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만화 '프리스트'는 이렇듯 순수하게 만화를 즐기던 청년의 자유로운 생각 속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2011년 그의 만화는 할리우드의 스타 감독 샘 레이미의 손에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다. 지난 5월 13일 미국에서 개봉한 작품은 1일 현재 북미 입장권 수입 6,500만 달러를 돌파해 제작비(6,000만 달러)를 넘는 무난한 흥행성적을 거두었고 오는 9일 국내에서 도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 만화 최초의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타이틀로 우뚝선 형민우 작가를 최근 서울 행당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분명히 제가 만든 건데 작품이 저보다 더 커버린 느낌이에요. 자식이 잘 되니깐 뿌듯한 아버지 같은 기분인데 내가 키운 자식이라고 자랑도 좀 하고 싶고 그래요. " 민머리에 온 몸에는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Mercy(은혜)'와 'Justice(정의)'라는 문신을 양 팔에 새긴 그의 겉모습은 다소 요란(?)했지만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은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우리나라 만화의 해외 진출은 내가 첫 타자라고 보면 될 것"이라는 그는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 제가 잘 돼야겠다는 사명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프리스트'는 악마가 된 신부의 행적을 그린 작품이다. 1999년 만화 잡지 연재 당시 한국 만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그림체와 독특한 이야기가 독자들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국내에서만 단행본이 50만권이나 팔려나갔다. 2003년 그는 연재를 중단했지만 해외진출은 그 무렵부터 진행됐다. 그의 만화를 눈여겨본 미국의 만화 출판사 '도쿄팝'의 사장이 한국에 찾아와 '프리스트'의 판권을 사면서 33개국에 출판된 그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100만부 가량 판매됐다. "당시 해외 시장에서는 일본 만화에 대한 수요가 높았지만 일본 만화의 판권이 비싸고 까다로워서 대체재가 필요했죠. 한국에 그에 준하는 수준의 작품이 많다 보니 처음에는 대안 차원에서 수입이 이뤄졌다가 수출 규모가 점점 커졌지요. " '프리스트'는 2006년 소니 픽쳐스에 의해 영화화 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해 5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영화화 과정에서 원작은 다소 수정됐다. 영화 속 배경은 미래로 바뀌었고 복수의 대상도 달라졌다. 원작과 비교해 시대적 배경이나 캐릭터가 바뀌어 기분 나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그는 " '당신 같으면 당신 작품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는데 기분 나쁘겠냐'고 되묻는다"고 답했다. 영화화 과정에서 그는 철저히 '원작자'의 위치를 지켜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2창작물'의 주인공은 새로운 창작자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만화 '프리스트'는 아직 미완결 상태다. 2003년 연재를 중단한 이후 작품을 이어 그리지 않았다. "세기말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저는 원래 작품을 할 때 완전히 거기에 몰입하는데 당시 상황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이었죠. 지금은 영화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니 시간이 지나 몰입이 가능해지면 그 때 꼭 완결지을 생각이에요. " 순수하게 만화를 즐기던 청년이 전업 만화가가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20대를 방황하며 보내다가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단편 만화 공모전에 낸 것이 만화가로서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1994년 만화 잡지 '소년챔프' 공모전에 당선된 그의 첫 단편 '열혈유도왕전'은 스포츠 만화였다. 이후 연재한 작품은 광개토대왕의 궤적을 그린 '태왕북벌기'. 4일부터 방송예정인 KBS 드라마 '광개토대왕'의 원작이다. '프리스트'는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현재는 이문열 작가의 원작 '초한지'를 만화로 옮기고 있고 SK텔레콤에서 진행하는 OSMU(원소스멀티유즈)프로젝트에 창작만화 '고스트 페이스'도 발간했다. 우연히 입문한 만화가의 길이지만 사실 그는 이미 준비된 이야기꾼이었다. 스포츠부터 역사, SF까지.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어렸을 때 닥치는 대로 보았던 외국 만화들이 자신을 키운 자양분이라고 말한다. "고모 세 분이 모두 외국인과 결혼해 미국에 사는데 한국에 올 때마다 번역되지 않은 만화 원서를 사다 주셨죠. 영어로 된 대사를 이해 할 수 없으니까 그림으로 연출을 이해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미국식 정서도 자연스레 익히게 됐지요. " 만화 뿐아니라 책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긴 것도 도움이 됐다. 정사보다 야사를 좋아하고 고전 설화와 독립영화를 즐겨보는 그의 '잡식' 취향이 다양한 정서를 이해하는 기본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만화는 정서가 우선"이라는 그는 그는 책도 보고 영화도 보는 직간접 경험을 쌓아야 다양한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외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면서도 우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혼자서 자연스레 익힌 그림 연출과 외국 정서 덕분에 훗날 '프리스트'가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기반이 됐다는 것. 그는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로 '드라마'를 중시하는 성향을 꼽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악으로 치면 멜로디를 중시하고 이야기를 할 때도 '극적'인 무언가를 꼭 넣는다는 것이다. 이런 극적인 정서는 무엇 하나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문화를 접하며 자연스레 몸에 터득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 만화 시장이 침체되면서 재능 있는 작가들이 게임업계로 많이 옮겨가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만화야말로 새로운 한류를 이끌 수 있는 주역이라고 주장했다. "만화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는 1차 창작물이에요. 의미 전달이 힘든 소설이나 영화와 다른 '만국 공통어'인 셈이죠. 제가 출발 테이프를 끊은 만큼 열정과 재능을 가진 후배와 동료들이 제 뒤를 이어서 계속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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