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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신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인 용은 출세와 부귀, 만사형통을 뜻한다. 특히 용은 황제 또는 황을 상징해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 임금의 옷은 곤룡포(袞龍袍), 황제의 자리는 용좌(龍座)라 불렸다. 조선의 역대 군주들을 칭송한 서사시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이 같은 상서로운 용을 주제로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특별기획전 '운룡정상'전(展)이 열리고 있다. 운룡정상(雲龍呈祥)은 '구름 속의 용이 상서로움을 드리운다'는 뜻이다.
전시장은 용 그림이 담긴 작품들을 비롯해 왕실의 어용(御用)작품, 동궁이 사용하던 자기 등 50여점의 명품들이 채우고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급 작품이 포함돼 있고, 소장가들이 판매를 위해 내놓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가격을 매길 수는 없으나 전체 출품작의 총액은 5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명품 전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왕을 상징하는 발가락 다섯 개 짜리 용이 새겨진 '백자청화오조룡문호(白磁靑畵五爪龍文壺)'. 이전에는 용의 발가락이 3개 혹은 4개이던 것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조선의 자존의식이 높아져 18세기에 제작된 것들은 발가락이 5개다. 대형 백색 항아리에 청화로 푸른 용이 새겨져 있어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데 국내에 전해지는 것은 10여점 뿐이다. 지난해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같은 형태의 작품이 43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매화와 대나무가 그려진 '백자청화매죽조문병(白磁靑畵梅竹鳥文甁)'은 보물 제659호인 귀한 작품이다. 병목부터 넓어지는 선이 우아하고 힘차며 매죽(梅竹)을 그린 필력에 격조가 높아 궁중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도자 이외에도 왕비의 처소에 둘렀을 것으로 전해지는 '십장생도팔곡병(十長生圖八曲屛)'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난해 마이아트옥션 경매에서 13억5,500만원에 낙찰된 작품을 소장가에게 빌려와 전시한 것이다.
현재 심사정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운룡도(雲龍圖)'도 빼놓을 수 없다. 감상용 용 그림이 드물었던 조선시대에, 현재 심사정의 작품 중 유일하게 전하는 운룡도라 더욱 귀하다. 중국의 정형화된 화풍과 달리 검은 먹빛으로 그려 진 구름 아래 웅장한 기운을 드러내는 역동적인 용이 조선의 독자적 화풍을 보여준다.
12세기의 고려청자로 제작된 '청자쌍용모양뚜껑향로', 물고기와 용이 새겨진 16세기의 분청사기 연적, 19세기의 '백자청화운룡문접시'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성인 입장료 3,000원이며 3월4일까지 전시된다. (02)735-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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