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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미 FTA 심판하겠다는 판사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쟁에 이제는 판사들까지 거들고 나섰다. 그것도 법정 안이 아닌 사이버 공간에서, 그리고 글이 아닌 '입'으로 나섰다. 한편으로는 우려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바람직한 측면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FTA 관련 투자분쟁에서 사법부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다. 한미 FTA는 투자분쟁이 발생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국제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모든 투자분쟁이 국제중재기구로 직행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우리나라 법원에 제소할 수도 있다. 국제중재기구를 이용하는 데 발생하는 엄청난 비용 때문이다. 멕시코 관련 메타넥스 사건은 변호사 비용만 40억원이 들었다. WTO 협정부터 제대로 공부를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나라 법원에 제소할 경우에 대비해 판사들은 한미 FTA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FTA는 20개에 가까운 부속 조약들로 구성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라는 국제조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 조약들이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어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려스러운 점은 판사들의 개입 시기와 방법, 그리고 장소에 있다. 시기적으로는 국회와 행정부가 가장 으르릉거릴 때, 방법 면에서는 사법주권 수호라는 국민적 감성을 건드리면서, 장소적으로는 법정이 아닌 인터넷ㆍ트위터ㆍ페이스북을 이용했다. 미국 대법원의 지혜를 참고해보자. 1950년 우리나라에서 6ㆍ25 사변이 발생했을 때 미국 선거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철강노조가 임금을 올려달라며 파업을 결정했다. 전쟁에 가장 필수적인 철강이 없으면 전쟁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쟁 중 군 통수권자의 권한에 근거해 철강회사들을 직접 수용(taking)했다. 철강노조는 대통령의 권한 범위와 관련해 법원에 제소했다. 대통령이 가까운 친구인 프레드 빈슨 대법원장에게 "괜찮은 거지?"라고 물으니 "몰라! 두고 보면 알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 다른 일화도 있다. 기업의 환경오염 책임을 대폭 강화한 환경책임법을 제정할 때였다. 기업들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한 의회는 환경책임법이 미칠 영향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레이건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의 통신 내용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하에 국가 기밀 사항이라며 거부했다. 의회는 즉각 법원에 공개를 신청했다. 의회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백악관에서 대통령의 대화 내용은 공개돼야 한다'는 법원 판결을 떠올렸지만 대법원은 '법적 분쟁이 아닌 정치적 사안'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의회와 행정부 간의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 협상 심판 삼권분립 어긋나 국제관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판례도 있다. 미국인 소유의 구리 회사를 칠레 정부가 수용하자 미 국무부는 즉각 미국 내 칠레 정부 자산을 동결하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보복조치의 정당성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국제관계에 관한 한 국무부가 가장 정통하므로 우리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며 국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국제관계에 관한 권한은 행정부에 있다는 헌법정신을 보여주면서, 복잡한 외교문제에 대한 판단은 국무부가 더 잘 한다는 현실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한미 FTA를 제대로 협상했는지 판사들이 심판하겠다는 것은 전문성뿐만 아니라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 사법부는 이 시대 모든 사회적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최후의 보루이자 저울이다. 그리고 그 저울은 법정 안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고 존경을 받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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