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국제채권단이 5개월 동안 줄다리기했던 구제금융 협상의 타결이 임박했다. 그리스가 연금삭감과 세금인상 등 채권단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개혁안을 제출하면서 이르면 25일(이하 현지시간)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그리스 협상을 논의하고 24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회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로그룹은 24일에 다시 만날 것이며 25일 EU 정상회의에서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융커 위원장은 "이번주 안에 최종 합의를 이룰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기자회견에서 그리스의 제안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협상 타결을 위해 헌신할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정상회의에는 채권단인 3개 기관의 수장 융커 위원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참석했다.
다만 최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정상회의 후 "EU 정상회의에서 타결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있다"며 다소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라가르드 총재는 "그리스의 새 제안은 분명히 종합적이고 자세했다"고 밝혔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고 협상이 아직 끝에 도달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날 채권단 요구의 상당 부분을 수용한 협상안을 제출했다. 연금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려 재정수지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리스 언론 등에 유출된 치프라스 총리가 융커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그리스는 채권단의 요구대로 재정흑자를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1%, 내년에는 2%를 달성하기로 약속했다. 재정지출은 이에 맞춰 올해와 내년 각각 27억유로와 52억유로 절감하기로 했다.
연금 부문에서는 조기 은퇴자에 대한 연금수급 제한조치를 즉각 시행하고 은퇴연령을 점진적으로 67세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일하는 세대가 내는 연금과 건강보험료도 인상하기로 했다.
또한 부가가치세율을 식품·의약품·호텔에는 11%, 이외의 상품과 서비스에는 23%를 적용해 세수를 증대하기로 했다. 또한 일종의 부유세인 연대세(solidarity tax)를 인상하고 법인세율 상향(26%→29%), 기업 이익에 12%를 부과하는 특별세 대상 확대 등도 제시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최종 협상안으로 국제채권단을 일단 설득했지만 국내 반발을 잠재워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그리스 연립정부의 다수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강경파 의원들은 협상안이 가혹하다며 거부하겠다고 밝혔고 연정의 소수당인 독립그리스인당(ANEL) 파노스 카메노스 당수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합의안의 조치들을 모두 반영한 법률 개정안들은 의회에서 먼저 처리해야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시리자 일부 강경파와 연정의 소수정당인 ANEL이 반대표를 던진다면 시리자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
한편 이날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그리스 증시는 전일 대비 9% 급등했으며 23일에도 3% 넘게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스의 2년물 국채 금리는 22일 전일 대비 5%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데 이어 23일(한국시각 오후9시30분 기준)에도 전일 대비 2.8%포인트 빠진 20.429%를 기록하며 안정을 찾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