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이 사무실의 인턴을 뽑았단다. 막내 직원이 80년대 후반 생인데, 이번에는 90년대 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 들어 온 인턴은 마치 신인류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선 자신이 맡은 일을 끝냈는가 여부에 관계 없이 6시만 되면 퇴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표현이 그렇게 얄밉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면) 상사가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하느냐’라는 질문에 인턴들이 한 대답이었다. ‘정해진 근무 시간에 집중해서 끝내면 되잖아요.’ 그뿐이 아니다. 급한 일로 휴일근무를 한 팀장에게 “팀장님의 가정이 심히 걱정된다”는 기상천외한 코멘트를 날리기까지 했다. 물론 환한 미소도 잊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군기가 빠졌다’며 혼냈겠지만, 이제 2주 뒤면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사실상 ‘조언’ 또는 ‘훈계’는 불가능했다는 게 지인의 전언이다. 이런 해프닝은 지인의 회사 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도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공채 지원자면 누구나 한번쯤 봐야 하는 ‘인적성검사’에도 ‘직장예절’이라는 파트가 등장한다. 퇴근 시간이 임박했을 때 가장 적합한 인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나 ‘내일 뵙겠습니다’가 아니다. ‘혹시 시키실 일 없나요’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란다. 자신이 맡은 일이 끝나도, 조직 또는 상사가 맡은 일에 대해 신경쓸 줄 아는, 지극히 동양적인 정서를 가진 회사원이 우리 풍토에서는 ‘가장 알맞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말 그대로 ‘눈치’ 또는 ‘비위’다. 좋게 말하면 소통 능력이고 공감 능력이다.
기자도 어느 정도 눈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하지만 후배가 말귀를 못 알아 들으면 뒤에서 욕할게 아니라 알아 듣게 가르쳐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자아를 형성한 요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속으로 한탄을 하게 될 때가 있다(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극도의 자기중심주의,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과 이익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자기중심성(Ego-centricity)이 강한 미디어다. 따라서 사람의 생각과 행동도 그처럼 바꿔 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때 사회학자 홉스테드(Hofstede)는 문화적 거리(Cultural distance)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이나 일본 등의 기업 문화를 ‘집단주의(Collectivism)’로 분류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집단주의’로 분류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눈치나 비위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더 충실한 세대가 성장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생활에서 주도권을 쥔 사람들이 자신들이 옳다고 믿어 왔던 ‘눈치 보기’를 모두가 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태의연하지만 알아듣게 설명하고 잘 따르면 유형, 무형의 보상을 해 주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가르치지 않았으니 정 체득시키고 싶으면 개인 대 개인의 관계 또는 회사 안에서의 비공식 조직 차원에서 가르치는 게 현명하리라 본다. 일본의 경영학자 노나카 이쿠지로는 ‘지식 창조 기업’을 이야기했다. 따지고 보면 회사 생활에서 가장 절실한 지식이 눈치와 비위다. ‘왜 그것도 없냐’고 욕할 게 아니라,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고 가르쳐 주면 어떨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