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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0월 3일] 국제금융시장의 양털 깎기

우는 사람이 있으면 웃는 사람도 나온다. 한쪽에서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토해내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가려고 한다. 이게 세상이다. 잔인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상대방의 성공과 자신의 희생이 동시에 진행되면 콘트라스트(contrast)는 더욱 강렬해진다. 이럴 때는 예외 없이 ‘음모론’이 고개를 든다. 자신이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성공을 위해 내가 희생당했다”고 믿는다. 인과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개연성은 높다. 음모론이 싹을 틔우기에 좋은 조건이다. 거침없는 기업 사냥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잇달아 쓰러지자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음모론’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게 ‘양털깎기’ 주장이다. 금융자본가들이 통화 팽창 및 긴축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양털을 깎아내듯 떼돈을 벌어들인다는 얘기다. 그 과정은 이렇다. 먼저 신용대출을 확대함으로써 사람들이 자산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한 후 갑작스레 대출을 회수하거나 억제함으로써 자산 가격의 폭락을 유도한다. 금융자본가들은 가격이 폭락한 자산을 헐값에 사들여 엄청난 차익을 챙긴다(쑹훙빙, ‘화폐전쟁’). 상당수 글로벌 금융 회사들이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는 상황이라 이런 음모론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정황을 보면 음모론에 귀를 닫기도 어렵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격이 급락한 회사를 헐값에 사들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철저한 계산과 함께 동물적인 본능도 빛을 발한다. 우리에서 벗어난 양 떼를 사냥하는 이리처럼 전격적인 행동이 감탄사를 토하게 만든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10월 이후에만 8개의 기업을 집어삼켰다. 백미(白眉)는 전력 회사인 콘스털레이션에너지그룹 인수였다. 전력 산업은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보장되는 업종이다. 따라서 주가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버크셔해서웨이가 인수하기 직전 일주일 사이에 콘스털레이션 주가는 무려 58%나 떨어졌다. 리먼브러더스와의 파생상품 거래로 큰 손실을 입은 탓에 새 주인을 찾아야 했다. 홍콩의 부호 리지아청(李嘉誠)도 동물적인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리먼브러더스 여파 때문에 홍콩의 동아은행이 예금 인출 사태로 휘청거리자 전격적으로 지분을 매입했다. 리지아청은 자신의 지론을 충실히 실천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물러설 때 나는 앞으로 나가고 다른 사람들이 얻으려고 할 때 나는 포기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사실 현금만 쥐고 있으면 지금처럼 좋은 찬스도 없다. 중국은 물론 보수적인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회사들조차 금융 회사 쇼핑에 나설 정도다.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ㆍ태평양 부문과 유럽ㆍ중동사업 부문을 노무라가 인수하는 것을 비롯해 미쓰비시UFJ파이낸셜 등 상당수 일본 금융 회사들이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금융 회사로 떠오른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리스크 관리가 성패 갈라 결국 중요한 것은 현금이다. 돈을 넉넉히 갖고 있으면 큰 어려움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아무리 음모와 술수가 난무해도 지갑에 현금이 넉넉하면 휘둘릴 염려가 없다. 버크셔해서웨이만 해도 올 6월 말 현재 312억달러의 현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현금을 넉넉히 갖고 있다는 것은 평소부터 리스크를 잘 관리했다는 뜻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값이 치솟는다고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붓는다면 ‘기회’가 찾아와도 살릴 수 없다. 오히려 털을 모두 깎인 채 알몸을 드러내고 추위에 떠는 양(羊)이 되고 만다. 리스크 관리는 탐욕을 억제하는 데서 시작된다.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면 눈앞의 위험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욕심을 억제하면서 리스크를 잘 관리하면 위기 때 양털을 깎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양털을 깎이는 신세로 전락한다. 베어스턴스ㆍ리먼브러더스 등의 몰락은 훌륭한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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