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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뮤지컬인지 모른다. 누가 출연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객들은 그 공연을 보러 간다. 바로 배우 겸 연출가 이석준(사진)의 '뮤지컬 이야기 쇼' 이야기다. 대중에게 뮤지컬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겠다고 단출하게 시작한 이야기 쇼가 시나브로 한국의 대표적인 뮤지컬 브랜드가 돼가고 있다.
"처음엔 100회까지만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벌써 10년이네요." 10년째 이야기쇼를 진행하고 있는 그조차도 10주년은 상상 못한 '장수'다.
10년 전 4월의 어느 날, 서울 홍대의 한 소극장에서 특별한 토크쇼가 열렸다. 그 시절엔 '아는 사람만 안다'던 뮤지컬을 소재로 한 토크 콘서트였다. 무대는 직접 목공소에서 떼온 나무를 짜 맞춰 만들었고, 초대 손님을 위한 의자는 근처 카페에서 빌려왔다. 직접 망치질을 해가며 무대를 만든 사람은 콘서트가 시작되자 마이크를 쥐고 무대에 올라 말했다. "안녕하세요, 뮤지컬 이야기쇼 MC 이석준입니다." 자칭 '열심히 막 만든 쇼', 올해로 10살을 맞은 이석준의 뮤지컬 이야기쇼는 그렇게 탄생했다. 초대받은 배우들이 작품 뒷 얘기를 하다가 주요 장면을 열연하는 등 형식에구애받지 않는다.
"80석 규모의 소극장을 월요일마다 채울 수 있는 뮤지컬 배우가 한국에 100명은 될 거라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이야기쇼는 MC를 제외하면 철저히 아마추어들이 만드는 공연이다. 작가, 음악감독, 프로듀서 중 뮤지컬 전공자는 없다. 그저 뮤지컬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다.
"뮤지컬 전문가들이 만드는 프로그램, 거기서 오가는 이야기는 형식적이고 한계가 있을 것 같았어요. 전문지식 없이 그저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반 관객들도 공감할 질문들을 좀 더 집요하게 팔 수 있죠." 비전문가들이 일궈낸 성과는 대단하다. 지난 10년간 시즌1·2를 거치며 총 161회 공연을 올렸고, 오는 26일 10주년 공연까지 총 162번의 토크쇼를 열게 된다. 162회 동안 400명이 넘는 출연자가 나와 노래도 부르고 신명 나게 관객과 뒷담화도 나누었다. 더 큰 성과는 콘서트 입장료로 그동안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콘서트의 매회 티켓 수익은 비영리단체인 '사랑밭'을 통해 추천받은 어린이들에게 후원금으로 전달된다.
콘서트는 뮤지컬 공연이 없는 월요일에 열고, 홍보 수단이 많은 대형 작품보다는 창작뮤지컬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10주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만큼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중소형극장에서만 콘서트를 하다 이번에 처음 1,000석이 넘는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하는 거에요. 관객들도 대극장에 대한 기대가 클 거라는 점이 부담인데, 결론은 '이야기쇼 답게 가자'에요. 아마 공연장에 오신 분들이 봤던 LG아트센터 무대 중 가장 황량한 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뮤지컬 수다를 떨며 10년을 지나왔다. 또 다른 10년, 이야기쇼의 20주년을 기대해봐도 될까. 볼멘 소리와 함께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답변이 돌아왔다. "20주년엔 저 쉰셋이에요. 팔순이 되어도 하자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데, 제가 MC가 아니더라도 이야기쇼는 끝없이 자생력을 갖고 성장해야죠.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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