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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기도 고양외국어고등학교에서 집단으로 결핵환자가 발생했다. 결핵 환자는 4명이었지만 면역력이 약해질 경우 결핵에 걸릴 수 있는 잠복 결핵 환자가 128명에 달해 결핵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양결핍이나 면역력이 약해지면 발병하는 결핵은 이른바 후진국 병이라 불린다.
결핵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위세를 떨쳐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도 결핵에 따른 사망률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국가의 결핵관리사업을 통해 점차 발병 비율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해마다 약 3,000명의 환자들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있다.
기원전 7,000년 석기시대 화석에서 흔적이 발견돼 지금까지도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결핵을 치료할 열쇠를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발견했다.
조은경(45)충남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주도하고 김좌진ㆍ이혜미ㆍ신동민 박사 과정생 및 김진만 교수가 참여한 이번 연구는 세포의 면역 작용 중 하나인 자가포식을 유도해 결핵균을 없애는 결핵치료제의 구체적인 작용 원리를 최초로 밝혀냈다. 연구 결과는 숙주ㆍ병원체 연구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셀 호스트 앤 마이크로브'지 5월호에 게재됐다.
"집에 도둑(결핵균)이 침입했을 때 경찰(결핵치료제)과 집주인(세포)이 서로 도와 도둑을 잡으면 더 효과적이겠죠."
조 교수가 외부에서 투여하는 결핵치료제와 세포의 면역체계인 자가포식이 공조해 결핵을 치료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비유한 말이다.
자가포식이란 '자기 살을 먹는다'는 뜻으로 영양분이 부족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처하면 생물체가 생존을 위해 시도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자세히는 세포가 각종 스트레스 상황을 만났을 때 자기 내부 단백질 덩어리나 소기관을 파괴해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가포식 능력이 망가지면 쓸데없는 단백질이 청소되지 않아 결국 뇌신경계 질환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인체 면역 체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등 자가포식의 새로운 역할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조교수 연구팀은 지난 2009년 햇빛을 보면 활성화되는 비타민D가 세포의 자가포식을 유도하는 것을 알아낸 후 후속 연구로 결핵치료제를 투여한 후에도 세포질 내에서 자가포식 현상이 일어나 결핵균을 없앤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지금까지 결핵치료는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결핵 치료는 1차와 2차로 구분되는데 초기 결핵의 경우 1차로 이소니아지드ㆍ리팜핀ㆍ피라지나마이드ㆍ에탐부톨 등의 약물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복용해야 했다.
만일 1차 치료가 실패할 경우 2차로 카나마이신ㆍ파라아미노살리실산 등의 약을 처방하지만 약물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슈퍼 결핵'에 걸려 치료가 어려운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무엇보다 결핵치료제의 치료 과정도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는 점이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큰 걸림돌이었다.
조 교수 연구팀은 결핵치료제의 원리를 찾기 위해 자가포식 유전자가 결핍된 초파리에 어류결핵균을 감염시키고 결핵치료제를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자가포식이 능력이 없는 초파리들은 치료 이후에도 자가포식 능력이 있는 초파리에 비해 생존율이 눈에 띄게 낮았으며 결핵균도 오히려 늘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세포의 자가포식이 일어나지 않으면 결핵치료제를 복용한다 해도 성공적인 결핵치료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연구팀은 세포의 자가포식이 일어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활성산소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활성산소는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호흡 과정 중 산소의 불완전 연소에 의해 생겨나는 화합물이다. 일반적으로 세포 내에서 필요 이상으로 생성되면 생체 조직을 공격하고 세포를 산화, 손상시키기 때문에 유해산소라고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생물 감염이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생체방어 작용도 수행하며 아주 적은 양이 분비되면 세포 내 중요한 신호전달을 수행하는 등 활성산소의 긍정적인 역할도 보고되고 있다. 조 교수 연수팀은 자가포식 기능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활성산소의 신호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교수는 "결핵치료제가 들어가자 결핵균이 활성산소를 만들어내고 이는 세포에서 활성산소를 만드는 'NADPH 산화효소'를 자극해 결과적으로 자가포식을 일으켰다"며 "활성산소가 자가포식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작동 원리를 밝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교수는 "현재까지는 결핵치료제가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세균이 세포벽을 만드는 것을 억제하고 세균 단백질, 핵산 합성을 억제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며 "자가포식을 활성화시켜 결핵치료제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 난치 결핵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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