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메카'라는 서울 대학로가 요즘 술렁이고 있다. CJ그룹이 대학로 최대의 맹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CJ는 오는 5월을 전후해 대학로 최대 규모의 'CJ아트센터'를 오픈한다. CJ아트센터가 개관될 경우 CJ는 대학로에서만 6개 극장, 총 2,600여석 규모의 시설을 보유한 대학로 최대 큰손으로도 자리잡게 된다.
대학로 공연계는 결국 '대학로 성공신화'마저 넘겨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대학로에 밀집한 공연장은 112개. 하지만 "예술로 흥정하지 않겠다"며 한 우물을 파온 중소 연극인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우려가 즉시 현실화되지는 않겠지만 대기업이 대학로 공연시장에 들어온다면 '난타'로 이름을 날린 PMC 프로덕션의 송승환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올 확률은 더 작아질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송승환 배출은 대기업이 아직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역설(逆說)이 공연계의 정설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ㆍJYP의 박진영ㆍYG의 양현석, 엔씨소프트의 김택진ㆍ넥슨의 김정주 등 국내 신흥 파워 인물들도 모두가 공교롭게 대기업이 미처 그 분야에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배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그럴까. 사실 기업 활동이란 게 부침(浮沈)의 과정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중소기업일 때 부침과 시련을 겪으면서 단단해졌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과정을 밟아왔다. 하지만 정작 국내 대기업들은 기업 성장의 당연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 그런 중소기업들을 지켜보고 격려하는 대신 인수합병(M&A)으로 손쉽게 해당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결국 중소 공연인들은 CJ가 대학로 성공의 기회를 빼앗아가는 상황을 걱정하는 셈이다.
새 기업을 만들어서 키우는 '기업가정신'의 실종은 최근 한국사회의 화두다. 하지만 그 전에 '왜'새 중견 기업가들이 많이 배출되지 못하는가라고 물어야 된다. 그리고 그 뒤에 혹 대기업의 그런 행태들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지 검토해봐야 한다. 노나라 재상 공의휴(公儀休)는 '농사를 짓는 농부나 베를 짜는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지 않겠다'며 채소를 기르던 텃밭을 없애고 자기 집 베틀을 불살라 화제가 됐던 역사 속 인물이다. 대학로가 지금 CJ에 요구하는 것은 공의휴와 유사한 마음과 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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