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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아들은 지방의 한 대학의 법학과에 재학 중이다. 지난해 말 아들과 단 둘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장래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들은 "오는 2017년이면 사법시험이 폐지되니 졸업 뒤 로스쿨밖에 갈 곳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이 기왕 법조인의 꿈을 안고 법 전공을 택한 만큼 기자도 빠듯한 월급쟁이로서 걱정이 앞섰지만 끝까지 아들을 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아들은 돌연 "로스쿨 진학 포기는 물론 법조인의 꿈을 접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애초 법조인의 길이 멀고도 험한 것이어서 그럴 만도 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로스쿨 출신, 특히 지방 로스쿨 출신들이 정작 갈 곳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엄청난 노력과 적잖은 경제적 부담을 들여가며 로스쿨을 졸업해봤자 '초 고등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 아들의 판단이다. 지난주 1기 졸업생을 배출한 지방 로스쿨 졸업식장에서는 이 같은 갈 곳 없는 지방 로스쿨 출신들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났다.
동아대와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은 지난 15일과 16일 잇따라 학위수여식을 개최하고 각각 72명과 97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학교 측의 공식 통계로는 부산대 로스쿨은 45~50명 내외, 동아대 로스쿨은 25~30명이 취업을 완료한 것으로 돼 있다. 취업률이 절반도 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 로스쿨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검사 채용과 재판연구관(law clerk) 등에 채용된 졸업생은 부산대가 10명 내외, 동아대가 3명 내외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졸업생 중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전체의 10분의1 수준에 그친 셈이다. 그나마 취업이 됐다는 나머지 졸업생들 중에는 법률 실무를 익히기 위한 6개월에서 1년짜리 한시적 인턴 변호사가 대거 포함돼 있어서 실제 취업률은 이보다 훨씬 낮은 게 현실이다.
1기 로스쿨 졸업생들이 한꺼번에 1,500명씩 쏟아져 나오면서 빚어진 예상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지역 대학에 대한 홀대까지 겹쳐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졸업생들은 전한다.
실제 부산의 A법무법인은 8명의 인턴 변호사를 모집하면서 절반인 4명을 서울 출신으로 할당했다. 9명의 인턴을 뽑은 B법무법인도 절반을 서울 출신으로 채웠다. 6개월 계약 인턴 변호사는 한 달에 고작 10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지만 이마저도 지역 로스쿨 졸업생들에게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형국이다.
법률 시장 개방으로 외국계 대형 로펌의 국내 상륙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1,000명 가까운 예비 법조인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맨다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녕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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