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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럽 국채 1,000억엔 규모 매입 까닭은?

'스페인 구제금융' 위기 미리 차단<br>세계 금융시장 선도국 입지 노려



국제 금융시장에서 중국 등의 그늘에 가려 존재감을 잃어가던 일본이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모처럼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난 11일 일본 정부가 1,000억엔 이상의 유럽 국채매입 계획을 발표하고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채권에 대한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주요국인 일본이 일정 비율 사들이는 것이 타당하다"며 1,000억엔 규모의 채권매입 의사를 밝히자 금융시장은 이에 화답하듯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공개적으로 다른 나라 국채매입을 통한 자금지원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야자키 히로시 일본 신킨자산관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마침내 국제 금융 시스템 안정에 기여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의 발표 이후 전날 한때 유로당 1.2873달러까지 떨어졌던 유로화 가치는 12일 1.30달러를 웃도는 수준으로 회복했고 새해 들어 한때 7.18%까치 치솟은 포르투갈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6.9%를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져 한숨을 돌렸다. 전문가들은 안정지향성이 강한 일본이 유럽 채권을 매입해 재정위기국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하고 나선 데 대해 유럽 경제의 안전성을 부각시켜 시장에 안도감을 주는 데 적잖이 기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통상 자산매입 내역을 비밀에 부치는 일본이 EFSF 채권의 20% 이상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은 유럽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로 인해 다른 국제 투자자들이 채권매입에 동참해 유럽의 채무위기를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우선 이달 하순에 발행되는 50억유로의 채권 가운데 20% 이상을 사들이는 데 이어 추가 발행시에도 일정 비율을 매입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이례적'인 일본의 공개적인 채권매입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일본이 '선도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그리스ㆍ아일랜드에서 포르투갈로 번지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으로까지 확산돼 세계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의 포르투갈 국채매입과 일본의 EFSF 채권매입 발표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에 대한 구제금융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12일(현지시간) 포르투갈의 국채발행을 하루 앞두고 발표된 일본의 유럽 지원 약속 역시 포르투갈보다는 스페인을 의식한 조치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스프레덱스의 트레이더인 필 길레트는 "유럽에 대한 최근의 지원 움직임은 스페인 구제금융이라는 커다란 잠재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유럽 국가들을 지원하는 국제적 노력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일본 외에 이번에 1차적으로 발행되는 50억유로 규모의 EFSF 채권을 매입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나라는 중국과 노르웨이, 중동 국가 등이다. 하지만 일본의 유럽 채권매입에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대외적인 목적 외에 중국을 견제하면서 금융시장에서 일본의 위상과 역할론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또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잇따라 국채매입 선심을 쓰며 금융시장에서의 입지를 높인 중국과 암묵적인 경쟁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중국에 이은 외환보유액 2위 국가이자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국과 달리 유럽 위기를 '나 몰라라'할 경우 유럽과의 관계에서 중국에 밀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아울러 일본은 엔고(円高) 방어를 위해 유럽 시장 안정에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정위기로 유로화 가치가 속락할 경우 유로에서 이탈한 자금이 엔화로 몰리면서 엔고가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로화 위기로 엔화가 급등하는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이례적인 지원조치에 나섰다"며 "아울러 1조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 가운데 유로화 자산 비중을 늘려두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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