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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경제적 판단엔 '정체성'도 큰 영향 미쳐

■아이덴티티 경제학<br>(조지 애커로프·레이첼 크랜튼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경제적 인간의 판단과 결정이 오로지 비용과 이익의 숫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회적 지위, 즉 정체성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저자들은 개인의 정체성에 따라 경제적 판단과 결정이 달라지는 현상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저자인 조지 애커로프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는 특정한 상(像)을 갖게 되는데 그 상이 바로 정체성이다. 사람들은 그 상을 유지하면 안도감을 느끼고 벗어나는 행동을 할 경우 스스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담배의 수요, 남녀의 수입 격차감소 등에 초점을 맞추는 기존의 표준경제이론으로는 남녀의 흡연 비율 격차 감소를 설명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표준이론으로는 때때로 경제적 논리와 정 반대로 행동하는 인간의 비이성적 판단과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예를 들어 192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남성 흡연자 비율은 약 60%로, 여성 흡연자보다 많았다. 1950년에도 여성 흡연은 남성보다 훨씬 드물었지만 이런 남녀 간의 차이는 1990년대 들어오면서 거의 사라졌다. 저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고소득 여성들도 20세기 초에는 흡연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 소득 증가만으로 여성의 흡연율 증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미국 여성의 흡연율 증가는 남녀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성(性) 규범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는 여성흡연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1970년대 여성운동으로 여성 흡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유화적으로 바뀌었다는 것. 저자는 흡연 사례에서 보듯 누구에게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 혹은 금지되어 있는지 등 정체성을 결정하는 사회적 규범과 인종, 소득수준, 성별 등 사회적 지위가 일ㆍ소비ㆍ저축 등의 방식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직장을 계속 다닐까, 결혼을 할까 등 삶의 중요한 문제는 물론 조깅할 때 어떤 티셔츠를 입을까 하는 사소한 선택에도 정체성이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정체성은 경제학의 기본 이론인 수요공급 이론만큼 유용하다"고 강조하며 조직 운영 방식에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기존 경제학자들은 보너스 등 금전적 보상이 근로자들의 사기와 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저자들의 시각은 '정체성 경제학'에 근거한 해법을 제시한다. "근로자가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고 자신의 규범을 회사의 목표에 맞춘다면 회사는 제대로 운영된다"는 게 저자들의 해법이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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