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랐다. 일주일 전, '유병언 검거에 육해공군 동원'이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육군 3개 사단에 해군 대잠초계기, 공군 레이더까지 … . 법적 타당성에 의문이 들 즈음 군에서 문자가 날라왔다. 평소의 경계와 감시 업무를 강화하는 수준이며 검문과 검색은 경찰이 맡고 있다는 요지였다.
군이 적극 부인·해명하지 않는다는 점이 개운치 않았지만 애써 납득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보다 세심하게 주의를 집중하겠다는 군의 설명을 믿었다. 육군 투입도 세월호 실종자 수색의 연장선이라고 여겼다.
실상은 달랐다. 군의 설명과 달리 군이 유병언 검거작전에 동원됐다는 점을 인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주 말 TV 화면에는 군의 다양한 활동 장면이 그대로 나왔다. 병사들이 항구에서 유병언의 인상착의가 담긴 포스터와 행인들을 대조하거나 빈 컨테이너를 조사하고 연안여객선 내부에 들어가 승객들의 면면을 살피는 장면도 나왔다.
경찰이 맡는다는 검문과 검색을 군이 수행했다면 국군의 사명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제 5조 2항을 부인하는 것이다. 유병언을 흉악범처럼 몰아 마녀사냥하듯 올가미를 채우려는 발상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우리 헌법(27조 4항)에도 명시돼 있거니와 프랑스 대혁명 시기부터 225여년이 흐르도록 인류가 가다듬어온 보편적 가치다.
검찰과 경찰도 모자라 군까지 동원한 토끼몰이식 체포작전은 비이성적이다. 일각의 지적대로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의 속죄양으로 유병언을 내세웠다면 이 역시 정상적인 판단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법치의 실종이다. 군 동원의 법적 근거는 헌법과 통합방위법·국군조직법과 관련 시행령(대통령령 19745호) 등 어느 법 조항에도 없다. 군에 문의하니 행정절차법 8조 2항의 '행정응원'이 근거라는 답변을 내놨지만 법무부와 검찰·안전행정부에 확인한 결과 어느 부처도 군에 행정응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설령 군 병력 동원이 행정응원에 해당되더라도 세 가지 전제 조건 중 하나를 충족시켜야 한다. 평시의 군 동원은 안보위해·대공용의·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유병언은 어디에 해당되나.
전화 인터뷰가 성사된 5명의 헌법학자들은 하나같이 경계와 감시 이상의 검문검색은 위헌 행위라는 견해를 보였다. 차기 한국공법학회장에 최근 선출된 전북대 송기춘 교수는 "변질된 계엄상황과 다르지 않다"며 "권력의 입맛따라 군이 멋대로 동원되는 나쁜 전례가 남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대통령학을 공부하고 원칙과 법치를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명령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밑에서 과잉 충성하는 과정에서 법치가 무시됐으리라. 그는 누구일까. 헌법의 가치와 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누가 군을 함부로 움직이려 드는가는 반드시 밝혀낼 필요가 있다.
남은 과제는 이성을 찾는 데 있다. 우리 군은 가뜩이나 피곤에 절어 있는 상태다. 군이 본질적으로 피로와 헌신을 강요받는 조직이라도 연초부터 이어진 비상대기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마냥 늘어지고 있는 마당에 위헌 소지가 분명한 민간인 검거까지 군이 동원될 이유가 없다. 군에서는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도합 6억원 상금에 경찰의 경우 1계급 특진이 걸린 유병언 체포가 진급에 영향을 줄 것이라 기대하는 현지 지휘관은 없을까. 무장 군인이 버스를 세우고 검문에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이젠 정상으로 돌아가자. 군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최고의 전투력은 제대로 된 명분과 적절한 휴식이 전제될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권력은 이성을 찾고 군은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hongw@sed.co.kr
/권홍우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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