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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 따르면, 태초의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있었다. 비록 곰에게 져 국조(國祖) 상징의 자리는 내 주고 말았지만 삼국유사 등 역사서 기록에서는 곰보다 호랑이가 월등히 자주 등장한다. '김현감호(金現感虎)' 설화에서 호랑이는 육체의 힘 뿐 아니라 덕을 지닌 영물로 그려졌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1881~1936)은 한국인을 만나면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을 정도고, 시인 최남선(1890~1957)은 '조선은 호담국(虎談國)'이라 할 만큼 설화에서도 호랑이 이야기가 으뜸이다. 경인년을 앞두고 호랑의 생태와 어원, 관련 민담과 설화, 예술과 일상 생활을 폭넓게 다룬 '십이지신 호랑이'가 출간됐다. 특히 한국중일 3개국에서 호랑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비교ㆍ분석한 것이 흥미롭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엮었다. 한국의 호랑이 문화는 다채롭다. 두려움과 친근함이 공존한다. 호식장(葬)이나 호식총(塚) 같은 독특한 장례와 무덤 양식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면 다른 사람을 호랑이에게 유인하는 '창귀'가 된다는 믿음 때문에 생겨났다. 하지만 사나운 호랑이도 뛰어난 지혜와 깊은 불심을 가진 인간에게는 결국 지고만다. 도덕성과 정신성이 자연의 힘보다 위에 있고, 따라서 자신을 다스리는 정신력이 없으면 호랑이는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고 한국인들은 생각했다. 반면 당나라 때 기담소설인 이경량의 '인호전(人虎傳)'을 보면 촉망받던 선비가 포악한 행동 끝에 호랑이가 된다. 중국에서도 호랑이는 영물로 여겨졌지만 그들의 설화에는 인본주의적 유교 색채가 강하다. 이 '인호전'이 개화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산월기(山月記)'라는 소설이 됐고 일본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다. 일본 옛이야기에서는 인간이 싸움에서 호랑이를 물리치는 내용의 '퇴치담'이 주를 이뤘는데, 이는 일본 땅에는 호랑이가 없으므로 외부에서 전해진 호랑이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지어낸 것이다. 삼국의 호랑이 문화는 동아시아 문화의 교류와 융합까지도 보여준다. 이 책은 유한킴벌리의 사회공헌 연구사업 지원으로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가 시작한 '십이지신' 시리즈의 첫 책이다. 1만5,000원. 한편 일본의 야생 동물 관련 논픽션 작가인 엔도 기미오의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가 일본어판이 나온 지 24년 만에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임진왜란 때까지만 해도 조선에는 꽤 많은 호랑이가 서식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일제가 국토 개발을 명목으로 호랑이를 무차별 사냥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는 1922년 경주의 대덕산에서 잡혔다. 미야케라는 일본인 순사가 사살했고 그 가죽을 일본 황족에게 헌사했다고 한다. 책은 호랑이 멸종에 대한 일제의 책임을 고발하는 동시에 일본인 저자의 사죄를 동시에 전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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