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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초승달이 얼굴을 내민, 황혼녘이다. 지는 해를 등지고 검은 윤곽으로 표현된 여인들은 빨래를 짊어 나르고 있다. 굳이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젖은 빨래의 무게에 휘청이는 몸을 가까스로 유지하는 여인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그게 곧 삶의 무게다. 이들의 발치에는 빨래를 내려치는 판과 새참을 담아온 바구니도 놓여 있다. 고단한 일상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묵묵히 대변하는 듯하다. 다른 작품과 달리 밀레는 유독 이 그림에서 배경 묘사에 공을 들였다. 뒤쪽으로 강에 배를 띄운 남자가 모래를 건져 올리고 있으며 저 멀리 지평선 쪽에는 물을 향해 걸어가는 소들이 보인다. 소소한 내용도 흥미롭지만 이 작품은 빛을 이용한 극적인 효과가 핵심이다. 햇빛을 이용해 대상을 밝히는 것뿐 아니라 빛을 등진 인물을 마치 그림자처럼 거의 보이지 않게 표현한 것은 '선구자' 밀레가 거듭 도전한 일종의 실험이었고 이는 훗날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Millet, Barbizon & Fontainebleau)'전은 오는 5월 10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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