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방첩업무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규정은 국가안보와 관련한 방첩기관 활동에 대한 통합시스템 구축ㆍ운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경찰과 국군기무사령부 등 각 방첩기관에 대해 국정원이 기획ㆍ조정권을 갖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입법예고를 통해 모든 방첩기관이 참여하는 통합 방첩시스템 구축ㆍ운영을 위한 규정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공표했다. 외국 정보기관의 전방위적인 국내 정보활동에 대응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방첩체계 미비로 효율적 대응이 곤란하다는 이유다. 국정원은 방첩업무규정안을 만들었으며 현재 법제처에 법안심사를 의뢰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는 국정원이 지난 2001년부터 추진했지만 지나친 권한강화 및 인권 침해 우려로 10년이 넘게 국회에 발목이 잡힌 테러방지법의 또 다른 형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제처에 제출된 방첩업무규정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국가방첩업무의 기획 및 조정권을 갖고, 외국인이나 외국 정보기관을 접촉하기 사전에 국정원장에게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했다.
또 국정원장을 위원장으로 외교통상부ㆍ법무부ㆍ행정안전부ㆍ국무총리실 차관급 및 경찰청창ㆍ기무사령관ㆍ국방정보본부장이 참여하는 국가방첩전략회의 등을 설치ㆍ운영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국회 정보위원회 측은 입법예고와 달리 사실상 모든 방첩기관을 국정원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계산이라고 우려했다. 테러방지법은 10년이 넘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기술유출 등 외국인ㆍ외국 정보기관의 활동이 부쩍 늘어가는 추세로 방첩활동 강화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국정원이 과거 인권 침해가 극심했던 기관이라는 기억을 갖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국정원이 국가안보라는 명분에 앞서 방첩업무규정을 '제 2의 테러방지법'으로 보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국민과 국회를 설득할 수 있는 진정성을 먼저 보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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