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또 하나의 국립공원이 나타난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과 눈부시게 푸른 빙하호를 품고 있는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이다. 그 안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시골 마을 잭슨홀(Jackson Hole)은 평소에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휴양지이지만 매년 8월 말만 되면 140여명의 주요국의 중앙은행 총재와 저명한 경제학자 등으로 북적인다. 이른바 '잭슨홀 미팅'이라 불리는 1박2일간의 연례 심포지엄 때문이다.
△캔자스시티 연방은행총재 주재로 1978년 처음 열린 연례심포지엄은 원래 참석자가 많지 않은 그렇고 그런 친목 모임 성격의 학술회의였다. 장소도 콜로라도주의 베일(Vail) 등 여러 곳에서 열렸다. 하지만 1982년 잭슨홀로 장소를 바꾸면서 송어 낚시광이었던 폴 볼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이후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경제대통령들의 모임으로 격상됐다.
△조용한 마을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경제위기 때마다 파급력 큰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과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에 앨런 그린스펀 당시 FRB 의장은 잭슨홀 미팅 참석 직후인 9월부터 기준금리를 석 달 연속 인하했다. 모기지론 위기가 가시화되던 2007년에는 벤 버냉키 의장이 개막연설에서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후 9월부터 초저금리 정책을 진행시켰다. 2010년 2차 양적완화(QE2)를 발표한 것도, 지난해 3차 QE에 대한 시사도 모두 잭슨홀에서 나왔다.
△버냉키 의장이 올해는 잭슨홀 미팅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준 대변인 측은 "개인적인 일정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그가 내년 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3연임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퇴임을 앞두고 통화정책 방향을 언급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덧붙여 나온다. 어찌됐던 세계경기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처럼 나타났던 잭슨홀 효과를 올해는 보기 힘들 것 같다. /송영규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