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화환율의 급등세(엔저현상)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9일 엔화환율은 1달러당 99.4엔을 기록, 3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돌파했다. 이와 같이 엔화환율이 급등한 이유는 일본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한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가 양적완화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구로다 총재는 4일 앞으로 2년 동안 장기국채매입 등을 통해 일본의 통화량을 2배로 증가시키고 물가상승률을 2%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北리스크에 엔저 겹쳐 환율 급등락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양적완화정책과 엔저정책으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일본경제의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일본경제는 경제성장이 멈추고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20여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인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일본경제 회복이 어려운 상태였다. 따라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어 실시하기에 부담도 있는 엔저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한 것이다. 아직 엔저정책으로 인한 실물경제 회복은 보이지 않지만 최근 일본 주가는 크게 상승했고 이로 인해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70%를 넘고 있다.
하지만 엔저정책은 일본경제에는 무역흑자와 경제회복에 도움을 주지만 주변국의 무역적자를 유도하는 '근린궁핍화'정책이다. 주변국도 자국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엔저현상에 맞서 자국통화 절하를 유도하게 되면 결국 전세계적인 환율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유럽중앙은행 총재인 마리오 드라기는 제로금리수준인 여타 선진국 금리에 비해서 유로 지역은 0.7%에 이른다고 지적하면서 금리를 낮춰 유로화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국과 중국도 엔저현상으로 인해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모든 국가가 자국 통화가치의 약세를 유도한다면 결국 각국 무역수지에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인해 무역이 위축되고 경기침체만 심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자제가 요청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환율도 지난 3개월 동안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1월께에는 1달러당 1,054원을 기록, 수출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면서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을 요구하는 기업의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4월9일에는 90원가량 상승, 1,140원대를 기록했다. 이제는 오히려 과도한 원화환율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을 염려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원화환율이 급등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북한리스크와 엔저현상이다. 북한리스크는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원화환율을 상승시킨다. 또한 우리나라 경제는 일본경제와 산업구조가 매우 유사하고 무역경쟁국인 동시에 제3의 무역상대국이다. 따라서 엔저현상은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미쳐 결국 원화환율도 상승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시장안정 위한 미세조정정책은 필요
앞으로 원화환율은 변동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무역수지는 흑자기조를 보여 원화강세를 유도하지만 엔저현상과 북핵리스크로 인한 외국인 주식자금 이탈은 원화약세를 이끌어 양자의 힘의 균형관계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환율 급등락에 대비해서 선물환율과 환보험 등을 활용한 환헤징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엔저현상에 대해서 인위적인 원화환율 상승을 요구하기보다는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통 어린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외환당국은 추세를 거스르는 외환시장 개입은 부적절하지만 외환시장안정을 위한 미세조정정책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