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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정규직 문제, 출구부터 열어 놓아야

현대자동차의 한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는 지난 23일 대법원 판결이 예상대로 노동시장과 경영환경에 큰 파장을 초래하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시정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총선ㆍ대선과 맞물려 어느 때보다 커지게 됐다. 이미 정치권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비정규직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뜨거운 분위기에 이번 판결은 휘발유를 끼얹었다. 기업들은 근로계약과 작업장 지휘ㆍ감독 시스템을 다시 수립해야 할 처지인데다 고용비용까지 늘어날까 봐 초비상이 걸렸다.

이번 판결은 파견과 도급(사내하도급) 간의 모호한 경계를 분명히 정해 관행화한 불법파견에 제동을 걸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은 아니다.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근무하고 원청업체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경우에 국한된다. 2년 이상 근무해야 파견근로자처럼 정규직으로 전환됨은 물론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는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내하도급과 파견근로를 명확히 구분하는 등 제도적 개선책이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파견근로자의 범위를 좀 더 확대해달라는 경영계의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 파견근로자 보호법은 전문지식과 기술ㆍ경험 등이 필요한 32개 업종, 191개 직종에 한정돼 있다. 제조업이 제외되다 보니 생산현장에서 불법파견 형태로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부작용을 낳은 측면도 있다.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들이 제조업 분야에서 파견제한을 두지 않은 취지와 배경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의 주요인으로 사회안전망 확보 차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이다. 그렇더라도 기업 여건과 노동시장의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파견이든 사내하청이든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된 배경에는 높은 해고비용은 차치하고라도 해고 자체가 어려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자리잡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출구를 막아놓으면 입구를 늘릴 수 없다. 정규직의 기득권 양보 없이는 비정규직 문제는 물론 청년실업도 해결할 수 없다. 기업도 과거처럼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발상에서 벗어나 사회통합과 상생 차원에서 부담을 함께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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