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기 침체가 심화되며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긴축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긴축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독일이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59ㆍ사진) 독일 총리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자국 저축은행협회 회합에 참석해 "독일 경제를 생각하면 금리를 인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중시해온 기존의 전통을 깨고 "독일 국민의 예금을 남유럽 국가에 퍼줄 수 없다"는 민심과 저축은행 관계자들의 입맛에 맞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저축은행협회는 보다 많은 예금자들을 모으기 위해 물가상승률 이상의 금리를 고집하며 "유럽이 곧 금리인상을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단체다.
하지만 메르켈은 "다만 자금이 필요한 유로 위기국을 위해 유럽중앙은행(ECB) 금리를 낮춰 유동성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며 슬그머니 덧붙였다. 오는 9월 독일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고려해 기존의 긴축정책을 고수해야 하지만 주변국의 정치적 반발이나 유럽의 경기 침체를 감안하면 성장정책에 대한 요구를 외면할 수도 없는 독일의 처지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전일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과 필리프 뢰슬러 경제장관도 각각 "유럽위원회(EC)가 프랑스의 재정적자 감축 시한을 늦출 경우 찬성할 것" "프랑스는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는 발언을 내놓아 유럽 전역에 놀라움을 줬다. 메르켈 총리의 최측근이자 경제수장들이 완화 지지로 돌아선데다 지지 대상이 '역사적 앙숙'인 프랑스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내부에서 긴축정책에 대한 반발과 맞물린 정치적 위기가 경제 위기 자체처럼 남유럽 같은 주변국에서 프랑스 등 핵심국으로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독일 입장에서는 반긴축 압박을 받고 있는 다른 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긴축을 요구하는 자국 유권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다 보니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독일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지면서 메르켈 총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독일 경제는 주변국들의 경제 둔화로 유로존에 대한 수출이 급감해 올 1ㆍ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독일 경제가 역신장을 나타낸다면 금리인상에 관한 논쟁 자체가 무의미해지면서 긴축 완화 요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전통적 유럽 수출강국 중 하나인 네덜란드마저 긴축 완화로 선회할 만큼 유럽의 경제여건이 좋지 않고 북부 수출국이 흔들릴 경우 유로존의 미래마저 위협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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