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어디일까. 몽골제국이다. 전쟁을 치를 때도 상대방의 상인은 건드리지 않았다. ‘상인은 누구도 공격할 수 없다’는 칭기즈칸의 칙령은 제국의 분열 이후에도 지켜져 활발한 동서교역을 낳고 최초의 글로벌 경제로 이어졌다. 1155년 초원에서 태어나 1227년 8월18일 사망(72세)한 칭기즈칸이 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출발점도 경제에 있다. 나이 쉰을 넘겨서야 몽골의 초원을 완전 통일한 그는 교역을 위해 대외원정에 나섰다. 씨족단위경제에서는 가축을 방목해 젖과 가죽을 얻는 단순한 생산과정의 반복만으로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지만 부족연합을 넘어 국가체계로 발전한 후에는 보다 많고 다양한 물자가 필요했던 것. 언제나 사절단을 먼저 보내 통상을 요구한 후 불응시 전쟁에 돌입했다는 점은 정복의 성격이 단순한 약탈이 아니라 계획적인 경제전쟁이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통상외교의 시초 격이다. 칭기즈칸에게 고개 숙인 인구는 약 1억명.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1을 그는 어떻게 지배했을까.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능력 덕분이다. 군의 유연성과 기동성을 높이고 공성무기 같은 정복지의 신기술을 받아들였다. 이익을 공동배분하고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며 타부족민도 받아들였다. 현대의 스피드 경영과 신기술 개발, 인재발굴 육성, 인수합병(M&A)과 다를 바 없다. 자유로운 국제통상이 보장되는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는 칭기즈칸을 ‘문명의 파괴자’ ‘잔인한 학살자’라고 혹평했던 유럽. 새로운 문물이 유입돼 중세의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세계사의 주류에 편입되는 기회를 얻었다. 사후 780년이 지났지만 그는 비중 있는 영입 대상이다. 경영연구서는 물론 몽골제국의 역사를 통째로 삼키려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