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에서 처음으로 에볼라 감염 환자가 발생했다. 미국 내 에볼라 환자 발생은 이번이 네 번째이며 미 동부에서는 처음이다. 특히 인구 800만명의 대도시이자 세계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뉴욕에서 에볼라 환자가 발생함에 따라 에볼라 확산 공포가 커지고 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2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서아프리카를 방문한 뒤 에볼라 의심 증상을 보인 의사 크레이그 스펜서(33)가 바이러스 검사 결과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스펜서는 이날 오전 39.4도의 고열과 설사증세를 나타내 맨해튼 동북부 할렘 지역 자택에서 응급차에 실려 인근 벨뷰병원에 격리 조치됐다. 또 스펜서와 가까이서 접촉한 3명 가운데 1명도 입원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일원인 스펜서는 에볼라 주요 발병국인 기니에서 활동한 응급의학 전문의로 지난 16일 벨기에 브뤼셀공항을 거쳐 17일 뉴욕 JFK공항으로 귀국했다. 미 정부는 11일부터 JFK공항에서 기니·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등 에볼라 발원지인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입국한 승객을 대상으로 체온을 재는 입국검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스펜서가 유럽을 거쳐 입국하며 미국 검역체계에 구멍이 뚫렸다. 추가 정밀검사에서도 스펜서가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 유럽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더구나 스펜서가 입원 전날 밤인 22일 약 5㎞ 정도 조깅을 하는가 하면 맨해튼에서 브루클린까지 지하철로 이동한 뒤 볼링장에 갔고 돌아올 때는 택시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에볼라 확산 공포가 커지고 있다. 뉴욕시 당국의 발병일지 자료에 따르면 스펜서의 에볼라 발병 증세가 실제 나타난 것은 22일부터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와 더블라지오 시장 등은 이날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패닉 확산 방지에 안간힘을 썼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에볼라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감염자 체액의 직접접촉으로만 전파된다"며 "스펜서와 같은 지하철을 탔다는 이유로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뉴욕시는 (에볼라 환자 3명이 발생해 우왕좌왕했던) 댈러스와 다르다"며 "이미 에볼라 상륙에 대비해 세계 최고의 의료팀 등 행정당국이 만반의 대비책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역시 대응팀을 꾸려 뉴욕에 급파했다.
뉴욕 시민들 사이에도 큰 혼란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켈리 매키에(20)는 "(에볼라 확산) 걱정은 하지 않고 있고 단지 뉴욕에 필요한 경고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2001년 9·11테러, 2년 뒤 북동부 지역의 블랙아웃(대정전) 사태 등 위기 때마다 뉴욕 시민들은 폭동이나 약탈은커녕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왔다"며 "뉴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부 시민들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맨해튼 빵집에서 일한다는 로버트 캠벨(54)은 "지하철에서 에볼라 환자가 옆에 앉을지 누가 알겠느냐"며 "만약 누군가 기침이라도 하면 자리를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시 정부 역시 "전염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도 스펜서와 접촉한 사람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에볼라는 확산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물론 유엔과 주요국들이 물적·인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 검증된 치료제나 백신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날 서아프리카 말리 당국은 최근 이웃한 기니를 방문하고 돌아온 2세 여자아이가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내 에볼라 발병국도 6개국으로 늘었다.
서아프리카에서 활동 중인 의료진이 도리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현재까지 에볼라 사망자는 4,800명에 달하는데 현지에서 활동 중인 의료진도 440명이 감염됐고 이중 절반가량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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