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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글쓰기는 진솔한 나의 모습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소설 글쓰기 강좌 개설한

김나정, 노희준, 방현희, 이만교, 최옥정 등

지난 28일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소설 글쓰기의 필요성과 효과를 주제로 이야기하기 위해 방현희(왼쪽부터 시계방향), 최옥정, 김나정, 이만교 등 소설가 4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

소설가들이 바깥세계로 나왔다. 자신만의 닫힌 세계에 몰입한 채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듯한 이들이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시대의 흐름에 몸을 던지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옮겨가면서 작가들은 그들이 숨겨둔 비장의 무기로 사람들 앞에 선 것.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은 서울시교육청과 공동으로 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고전 인문 아카데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을 3년째 운영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 약사, IT전문가, 대기업 간부 등 다양한 직업군이 소설 글쓰기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지난 28일 대안연구공동체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4명의 작가들을 만났다. 그들이 왜 대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 시민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개설했는지가 궁금했다. 이날 참석한 소설가들은 김나정(41)·방현희(51)·이만교(48)·최옥정(51)(가나다 순) 등으로 모두 중견 소설가들이다. 그들과 소설 글쓰기의 매력과 강의 내용 그리고 참가자들의 반응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소설 공부위해 모였다가 본격 소설 글쓰기 강좌 개설

장선화(이하 장) “어떻게 소설가들이 모이게 됐나? 나이 차이도 있는데 원래 친한 사이였나?”

방현희(이하 방) “처음에는 한국 소설을 공부하자는 취지로 의기투합했다. 요즘 우리 소설이 인기가 떨어지고 덜 읽힌다고 하는데 우리가 손 놓고 수동적으로 독자를 기다리기보다 공부를 한번 해 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원래는 노희준 작가까지 포함해서 다섯명이다. 당대에 발표되는 우리 소설을 모두 읽자는 목표를 내 걸고 10여종의 월간지와 계간지를 나눠서 읽고 한달에 한번 모여서 서로 의견을 교환해가면서 공부하고 있다.”

최옥정(이하 최) “한국 소설의 미학적 지형도를 파악하고 소설 미학의 트렌드를 파악하려는 시도다.”

장. “각자 읽고 쓰기에도 바쁠 듯한데 글쓰기 교실을 열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이만교(이하 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불기 시작했던 인문학 열풍이 이제 글쓰기로 옮겨진 것이다. 자기공부라는 차원에서 일견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과거에는 등단을 목표로 한 사람들이 소설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SNS, 블로그, 프리젠테이션 등 일상 생활에서 자기표현을 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글쓰기에 관심이 전방위적으로 커져가고 있다. 작가 하면 굴방에 가까운 글방에서 혼자 쓰는 사람이고, 내 소설쓰기 아니면 수동적인 청탁에 의한 글쓰기 강의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강의를 직접 해 보자 해서 강좌를 개설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대학 강의실을 넘어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김나정(이하 김) “오늘 첫 강의인데 대학 강의보다 더 떨린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앞에 놓고 있는 심정이다. 소설을 공부하고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고 그들을 만나는 게 이상하게도 설렌다.”

그동안의 글쓰기 강좌는 논리학 전문가, 혹은 기자 등에 의한 논리적인 글쓰기 혹은 실용적인 글쓰기가 대세였다면 이들은 책을 출간할 정도의 수준으로 수강생들을 이끌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나의 민낯 대면하며 세상을 보는 눈 바꾸는 과정

장. “실용적인 글쓰기와 여러분이 가르치는 글쓰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 “실용적인 생활 글쓰기는 당장 필요해서 배우려는 사람들을 위해 글쓰기의 규칙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우리의 글쓰기는 문학을 중심에 놓고 있는데, 표현능력이나, 상상할 수 있는 힘, 깊이있는 성찰 등을 거치게 되면서 글쓰기의 진폭이 클 수 밖에 없다. 대학 등에서 글쓰기 강의를 10년째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소설을 중심에 두고 시작해서 점차 모든 장르의 책을 아우르면서 읽고 쓰는 작업을 수강생과 함께 한다. 쓰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말하기, 듣기까지 모두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결국 생각하기로 갈무리가 된다. 생각하기를 수정하면 자신의 욕망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최. “실용글쓰기가 기능을 훈련하는 것이라면 소설글쓰기는 세상을 보는 생각의 눈을 바꾸게 되는 과정이다. 기자가 ‘무엇(what)’을 쓰는 사람이라면, 작가는 ‘왜(why)’를 쓰는 사람이다. 그동안 길들여진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자기를 진단하고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가리는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실제적으로 정신과 치료보다 더 효과적인 치유법이 바로 소설 글쓰기다.”

김. “기존이 생각이나 통념을 버리는 과정은 사실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서 기존의 틀을 깨고 나오면 비로소 자기 생각에 닿는 지점에 오게 된다. 글쓰기는 언어로 정리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이. “글쓰기는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압박이나 병증을 치유하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 소설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직업군도 다양하다. 의사, 약사 등 전문직과 대기업 IT기업 등에 다니는 직장인, 출판사, 취업준비생 등으로 예전 같으면 등단이 목표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직업과 상관없이 나를 찾아 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꽤 된다. 이제는 제대로 살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을 다듬지 않으면 억울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읽기, 쓰기, 생각하기를 열심히 하면 삶의 질이 바뀌게 된다.”

5명 작가들의 글쓰기 강좌는 대안연구공동체와 함께 강좌를 기획하고 그들이 직접 강의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본적으로 읽고 쓰기가 포함되어있으며, 프로그램 중에는 강좌가 끝나고 책을 출간하는 게 목표인 것도 있다. 1개 강좌가 평균 8회로 구성되며 작가별로 가르치는 주제와 내용이 다르다. 이들은 추후에 5명이 모두 참가하는 강좌를 개설할 목표도 갖고 있다.

소설 이론과 쓰기 과정부터 2라운드 인생을 위한 글쓰기 등 주제 다양

장. “각자의 강좌 내용과 특징이 궁금하다.”

최. “강좌 제목은 ‘인생 2라운드 글쓰기’인데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작가는 사회를 보고 관찰하는 사람인데 요즈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문제가 청년 실업과 중년 퇴직이라고 생각한다. 퇴직 후 방황하는 남성이나, 출산육아 등으로 자신의 꿈을 포기한 여성 등 인생 2라운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읽고 나를 읽는 과정이 될 것이다. 목적은 한마디로 사회의 재발견과 문장의 재구성이고, 목표는 끝나고 각자 책 한권씩 출간하는 것이다.”

김. “강좌 제목은 ‘다소 무모한 소설 강좌’인데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내 속에 소설의 씨앗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이 수강대상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은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물어보는 것인데,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나는 여기에 실려 어디로 가는걸까’를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과 함께 읽고 쓰는 과정이다. 매주 한 가지씩 주제를 내 주고 글쓰기를 하는데, 이를테면 외계인을 만난다면, 내 인생에 가장 치욕적인 순간 등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이나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도 있다.”

이. “첫 번째 강좌 ‘글쓰기를 위한 책읽기 공작소’는 읽고 강의에 참석만 하면 된다. 그리고 짧은 단락 만들기를 통해서 글쓰기 훈련을 하게 된다. 길게는 2년씩 강좌를 듣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강좌는 한 사람의 글을 여러 사람이 함께 평가하는 합평반인데 첫 번째 강좌를 듣고 본격적인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과정이다.”

방. “강좌 제목은 ‘소설쓰기:캐릭터의 재발견, 전형의 창조’로 소설 속 인물을 만들어보는 시간이다. 시대별로 보면 반드시 나타나는 독창적인 인물의 유형이 있다. 작가가 한 시대와 문화의 특징을 반영하여 하나의 전형을 획득, 소설로 구현하면 역으로 독자들은 그렇게 구현된 캐릭터를 통해 한 시대와 문화의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강좌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그 캐릭터를 살려가면서 글을 쓰는 과정이다.”

이날 참석하지 못한 노희준 작가의 강좌는 ‘테마가 있는 소설 교실’과 ‘작가라면 다 알고 있는 소설문장 쓰기’ 등 두 가지다. 비평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소설의 궁금증을 채워주는 강좌가 첫 번째 것이라면 소설문체와 수필문체의 차이점을 깨닫고 소설 같은 문장을 쓰는 비법을 알려주는 과정이 두 번째 강좌다.

두 시간에 걸쳐 진행한 방담회가 끝났다. 소설가들의 글쓰기는 한마디로 치유의 글쓰기다. 소외되고 고립되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들여다보면서 문제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때로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깨닫는 과정이 바로 문학을 중심에 둔 글쓰기다.

한 주에 한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하는 부담은 있을지언정 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민낯을 만나게 해 주는 드문 기회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나이불문 직업불문하고 사람들이 소설가들의 글쓰기 교실을 찾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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